출퇴근하는 자유인의 쿠바 여행기
장면1. 햇볕이 눈부시게 내리쬐는 날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말레꽁 비치의 긴 방파제가 세상을 육지와 바다, 둘로 구분짓고 있다. 그 경계선에 드문드문 앉은 사람들이 적당히 부서지는 파도를 내려다본다. 한 무리는 사랑을 속삭이고, 또 다른 한 무리는 낚싯대를 드리우고 여유를 즐긴다. 그저 늘어져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도 있다. 이보다 평화로울 수 없을 것 같은 시간이 끝없이 이어진다.
장면2. 역시나 눈이 부시는 더운 날이다. 쿠바의 거리에 낯익은 음악이 울려퍼진다. 꽹과리와 장구, 징 같은 악기들이 뿜어내는 민속 장단에 맞춰 쿠바 사람들이 춤을 춘다. 국악과 살사가 묘하게 어울려 힘이 넘친다. 사람들의 얼굴에 땀과 웃음이 맺힌다. 열정과 흥겨움이 이질적인 두 집단을 감싼다. 문화와 문화 사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감이 삭제된다.
여행을 떠나기 전, 쿠바에 관한 두 가지 장면이 머릿속에 각인돼 있었다. 꽤 오래 전, 쿠바를 다룬 다큐멘터리에서 접한 이 두 가지 장면은 쿠바라는 나라를 '여유, 낭만, 사랑' 같은 단어들로 정의하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이 장면들이 무려 20시간을 날아 쿠바로 향하는 계기가 됐다. 공항에 내려 첫숨을 들이키자 뜨거운 공기가 훅 목을 타고 들어왔다. 꼭 오고 싶었지만, 정말로 오게 될 줄은 몰랐던 이 나라에 끝내 발을 내딛게 됐다는 사실이 실감났다.
한국으로 돌아와 쿠바에서의 시간을 돌이켜보고 있는 지금, 쿠바에서의 시간이 꼭 생각했던 것과 같았다고 말하진 못하겠다. 어쩌면 생각했던 것과는 멀어도 한참 멀었다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택시?"나 "시가?"라는 말(정확히 말하면 호객 행위)을 "안녕(hola)?"보다 많이 들었고, 환전소의 밑장빼기(?)에 당하지 않으려 돈을 바꿀 때마다 눈을 모로 뜨고 경계해야 했다. 일상화된 바가지에 실랑이를 벌이느라 진을 뺐고, 은연중에 가해지는 인종차별에 치를 떨었다.
파리에 대한 환상으로 프랑스 여행을 떠났다가 파리가 상상했던 것과 너무 달라 받는 충격을 '파리 증후군'이라고 한다는데, 어쩌면 쿠바에 도착한 직후의 하루 이틀은 '쿠바 증후군'을 앓았는지도 모르겠다. 여행을 시작하기 전, '호객'과 '바가지'로 점철된 여행기를 수없이 읽었음에도 직접 가서 확인하겠다는 마음으로 애써 외면했던 기억이 스친다. 결과적으로 지긋지긋한 호객과 바가지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으나, 그렇다고 여행이 만족스럽지 못했던 건 아니다.
아바나에서 웨딩촬영을 감행한 나와 여자친구에게, 특유의 외향성으로 말도 안 되는 관심과 축하 세례를 보내던 골목 곳곳의 사람들(한류스타가 된 기분이었다), 아바나에서 히론으로 향하는 길에 스페인어 선생님을 자처했던 택시 기사(조지 클루니를 닮았다), '트리니다드는 차메로로 통한다'는 말을 실감하게 한 골목대장 차메로와 그의 가족들(특히 마마 베리따 할머니가 그립다) 등등… '쿠바 증후군'을 극복하고도 남을 만한 에너지를 주는 사람들이 있었고, 적어도 이들에게서 만큼은 쿠바에 오기 전 상상했던 쿠바 특유의 여유와 낭만을 찾아볼 수 있었다.
다이끼리와 깐찬차라처럼 술을 못 마시는 몸뚱이도 술을 사랑하게 만드는 칵테일은 여전히 그립고, 기대만큼 레트로했던 아바나의 거리와 가히 환상적이었던 히론의 바다, 쿠바가 아니면 볼 수 없을 것 같은 트리니다드의 고유한 풍경은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것 같다. 여행을 방해하는 많은 요소들이 쿠바에 대한 환상에 균열을 내고, '쿠바 증후군'을 다소간 앓게 할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쿠바는 여행할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는 게 현재의 판단이다. 그리고 쿠바에서 돌아온 지 3주가 지난 지금, 다시 한 번 쿠바를 여행하는 꿈을 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