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서른, 이젠 수영을 배울 때

출퇴근하는 자유인의 취미생활, 수영

by 나자몽
DSC09776.JPG 쿠바 플라야 히론의 바다
수영을 배우기로 했다.


쿠바 여행을 다녀온 뒤, 스페인어를 공부해보기로 마음먹은 데 이어, 두 번째로 생각한 일이 수영이었다. 여행지에 있는 동안 '플라야 히론'이라는 바닷가에 간 적이 있었다. 그곳에서 처음으로 스노쿨링을 접했는데, 그때 느낀 기분이 꽤 좋았다. 1시간이 채 되지 않았던 바닷속에서의 시간 동안 마치 새로운 세계의 문을 하나 열어젖힌 듯했다. 수영을 배우면 좀 더 깊은 물속을 탐험할 수 있지 않을까... 일상으로 돌아와 시간을 보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회사 앞 스포츠센터에 등록했다. 생각은 많고, 행동은 느린 평소 내 모습답지 않게 빠른 결정이었다. 더군다나 은근히 물을 무서워하고 있었다. 과감한 결정의 배후에는 쿠바 여행 말고도, 여행을 함께 한 여자친구의 푸시가 있었다. 여자친구는 한국에 온 지 이주쯤 지나서부터 다시 일상을 따분해했다. 히론에서의 경험은 마찬가지로 강렬했는지 간절히 바다를 원하고 있었고, 여름이 되면 스노쿨링이 아니라 스킨스쿠버에 도전하겠노라고 공언했다. 처음엔 떨떠름했지만, 금세 현혹되고 말았다. SNS에 전시된 깊은 바닷속 풍경들, 블로그에 기록된 경험자들의 후기가 게으른 마음을 움직였다.


수영복2.jpg 새로 산 수영복, 수영모, 수경... 운동은 역시 장비 맛!
오리발을 차고 쿠바의 바다를 유영하던 그들처럼.


월수금 주 3일, 강습반이다. 처음엔 동네 청소년수련관처럼 가격이 저렴한 곳을 찾았다. 하지만 사전 답사 결과, 가격이 저렴한 곳들은 대개 강사가 비입수지도를 하는 곳이었다. 비입수지도라 하면, 강사는 몸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수강생들을 지도한다는 의미다. 주변에 수영 깨나 한다는 지인들에게 정보를 취합한 결과, 비입수지도는 당연 저렴하지만, 실력이 더디게 늘 거란다. 특히, 몸치에 박치라면... 평소 몸치에 박치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으나, 왠지 물속에선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걱정이 됐다.


결국, 조금 비싸더라도 강사가 입수지도하는 곳을 택하기로 했다. 뭐든 시작하기 전까진 굼뜨지만, 일단 시작하고 나면 마음이 급해지는 스스로를 배려한 선택이었다. 등록 한 스포츠센터를 찾아 강습하는 모습을 구경했다. 70cm짜리 유아풀에서 키판을 잡고 발장구를 치는 초급반이 내가 등록한 강습이었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초급반보다 동시에 강습이 이뤄지는 고급반 쪽으로 눈길이 갔다. 오리발을 장착하고 깊은 물을 휘적휘적 가르는 고급반 수강생들을 보다보니 히론의 바다에서 봤던 한쌍의 외국인 커플이 떠올랐다. 스노쿨링 장비에, 오리발까지 갖춰 차고 먼 바다를 유유히 탐험하던 둘의 모습... 내리쬐는 햇살과 적당한 물살이 둘을 조심스레 감싸주는 듯 했던 그때 그 분위기... 그에 반해 육지에서 반경 5m를 벗어나지 못한 채 떠내려가는 튜브를 바라만봐야 했던 여자친구와 나.


쿠바 플라야 히론, 유유자적 바다를 탐험하는 커플 한 쌍
1년 뒤를 기약하며...

스포츠센터 관리자의 말로는, 고급반에 들어가 자유자재로 수영하게 되기까지는 넉넉잡아 1년 정도가 걸린다고 한다. 1년을 다닐 수 있을까... 잠시 현타에 빠졌다가, 그날의 외국인 커플을 떠올리자 다시 마음속 불꽃이 타오른다. 앞으로 현타가 올 때마다 이 기억을 끄집어내 의지해야지. 만약 1년 뒤, 오리발을 끼고 수영장 곳곳, 바닷속 곳곳을 누비게 된다면 모두 히론 바다에서의 그 얼굴 모를 외국인 커플 덕인 셈이다.


'사람이 달라지려면, 안 하던 짓을 해야 한다'고 어디선가 들었다. 아마 어떤 예능 프로그램에서 연예인 중 한 명이 지나가듯 했던 말인 것 같은데, 낄낄대던 찰나에 뇌리에 박혔다. 30년 인생 처음으로 수영을 배운다. 두려워하던 물에 익숙해지면, 그래서 인생에 두려운 게 하나쯤 사라지면, 나도 조금은 달라지겠지. 어떤 변화가 생길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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