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흑백요리사 2> 최강록의 깨두부, 그리고 우리가 쓰고 사는 가면
**우승자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최강록 셰프가 <흑백요리사: 요리계급전쟁 2> 결승전에서 했던 말이 계속 마음에 남는다.
"조림을 잘 못하지만 잘하는 척했다"
"사실 공부도 노력도 많이 했지만 척하기 위해 살아왔던 인생이 있었다"
사람들은 그 말을 어떤 고백이나 폭로처럼 받아들였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이상하게도 그 말에서 해방이 아니라 깊은 동질감을 느꼈다. 왜냐하면 그건 기만이 아니라, 우리가 이 사회라는 무대 위에서 주체로 기능하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최소한의 통행료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그런 척'하며 산다.
능숙한 직장인인 척, 괜찮은 어른인 척, 자신이 뭘 원하는지 아는 사람인 척.
그 '척'이 없으면 우리는 타인 앞에 설 수 없다. 사회적 자아는 가짜가 아니라, 우리를 보호하고 관계 속에 머물게 해주는 필수적인 외피다. 아무 가면도 쓰지 않은 얼굴은 순수해서가 아니라, 너무 노출되어 있어서 위험하다.
라캉 식으로 말하면 우리는 모두 대타자, 즉 사회가 짜 놓은 상징적 질서 속에서 배역을 맡는다.
최강록은 '조림인간', '조림핑', '연쇄 조림마'라는 배역을 성실하게 연기했다. 조림으로 유명해졌고, 조림의 장인이라는 프레임 안에서 인정을 받았다. 그 프레임이 그를 살렸다.
나 역시 비슷하다. 나는 '영화 전공자', '철학 전공자', '에세이스트' 같은 배역을 입고 사회 속에 서 있다. 그건 나의 본질이라기보다, 이 세계 안에서 버티기 위해 내가 선택하고 길들여진 역할이다. 그 역할을 거부하면 자유로워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아무 자리도 주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 척'은 위선이 아니라, 생존 기술이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결승전에서 최강록이 내놓은 깨두부 요리는 가면을 찢어버리는 혁명이 아니다.
그건 긴 연극의 도중, 잠시 분장실로 돌아가 거울 앞에 서는 시간에 가깝다.
그는 그날 처음으로 "사람들이 기대하는 나"가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나"를 요리했다. 화려하지 않았고, 설명도 적었고, 조림도 없었다. 그냥 깨두부였다. 너무 단순해서 오히려 사적이었다.
그 깨두부는 그의 '진짜 자아'라기보다, 그가 자기 자신에게 허락한 최소한의 틈이었다.
"아, 나 이런 것도 좋아했지."
그 정도의 확인.
그게 충분했던 건, 우리가 그 틈의 가치를 알기 때문이다. 우리도 가끔 그런 순간이 필요하니까.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이력이 아니라, 그냥 내가 나로 존재하는 짧은 구간.
그래서 나에게 가장 감동적이었던 건 우승 소감이었다.
최강록은 자신이 "특출 난 음식을 하는 사람도 아니고, 전국에 숨어서 열심히 일하고 계시는 요리사분들 음식을 만드시는 일을 하시는 분들과 같은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라고 덤덤하게 말했다.
이 말이 아름다운 이유는, 그가 배역을 벗어던지겠다고 선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다시 가면을 쓰고, 다시 주방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한다.
이게 중요하다.
가면을 거부하고 “나는 진짜 나로 살겠다”라고 외치는 건 종종 낭만적으로 들리지만, 사실은 현실을 견디지 못하는 구조일 때가 많다. 반대로, 자신이 입은 가면의 무게를 알면서도 다시 그것을 쓰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태도에는 이상한 강인함이 있다.
그건 체념이 아니라, 책임이다.
그리고 어쩌면, 이 모든 장면은
백종원에서 안성재로 넘어가는 상징적 왕권 교체의 의식이었는지도 모른다.
넷플릭스라는 거대한 무대 위에서, ‘심판의 얼굴’이 바뀌는 순간.
하지만 그건, 오늘의 우승자가 자기 가면을 잠시 내려놓는 장면이 있었기 때문에 비로소 보인다.
대관식은 언제나, 조용한 인간의 순간 뒤에 온다.
우리는 모두 그런 척하며 산다.
그리고 가끔, 깨두부 한 접시만큼의 진실을 자신에게 내어주며,
다시 무대로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