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상상력은 왜 ‘순애보’라는 옷을 입는가

영화 〈휴민트〉를 보며 남은 불편함

by 라캉트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극장을 나오자마자 한 관객이 말했다.
“아, 재미없어.”

그 말이 오래 남았다.

이 영화가 지루해서라기보다, 어딘가 이미 본 것 같은 감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매끈한 액션과 해외 로케이션, 익숙한 스타 배우들.


모든 요소는 충분히 공들여 만들어졌지만, 정작 그 안에서 움직이는 세계는 낡아 보였다.


〈휴민트〉가 남긴 것은 실망이라기보다, 익숙함에서 오는 피로감이었다.



1. 북한이라는 ‘여성화된 타자’

영화를 보며 가장 불편했던 지점은 북한을 다루는 방식이었다.

이 영화에서 북한은 정치적 현실이 아니라, 반복해서 훼손되는 여성의 몸으로 등장한다. 오프닝에서 죽음을 맞는 여성 휴민트, 그리고 엔딩에서 구출의 대상이 되는 또 다른 여성들. 하얀 드레스와 무력한 상태로 전시된 그 이미지들은 서사의 긴장을 만들기 위한 장치로 기능한다.


문제는 여기서 북한이 더 이상 하나의 사회나 주체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들은 설명되어야 할 세계가 아니라, 남한의 구출 서사를 정당화하는 감정적 장치가 된다.

북한 보위성 조장 박건(박정민) 역시 체제의 얼굴이 아니라 죄책감과 희생으로 완성되는 ‘순애보’의 인물로 그려진다. 정치가 지워진 자리에는 멜로드라마가 들어선다.


우리는 왜 여전히 북한을 이해의 대상이 아니라, 연민해야 할 존재로만 상상하는 걸까.

연민은 따뜻한 감정처럼 보이지만, 때로는 타자를 복잡하게 바라보지 않으려는 가장 편한 방식이기도 하다.



2. ‘안전한 악마’와 평면적인 세계

영화의 주요 배경은 블라디보스토크지만, 실제 촬영은 다른 지역(라트비아)에서 이루어졌다.
문제는 장소의 진위가 아니라 공간의 감각이다.


동구권 특유의 시간의 층위나 역사적 질감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공간은 인물들이 지나가는 기능적 배경으로만 존재한다.


여기에 등장하는 러시아 마피아 역시 복잡한 존재가 아니라, 말이 통하지 않고 폭력적인 전형적인 악역이다.

복잡한 권력이나 현실을 건드리는 대신, 부담 없는 타자를 악마로 설정하는 방식.

세계가 단순해질수록 서사는 편해지지만, 관객은 그 단순함을 금세 알아챈다.



3. 스타일은 남고, 세계는 비어 있다

영화의 이미지에는 익숙한 레퍼런스들이 보인다.

멜빌의 정면 구도, 오우삼의 비극적 액션 리듬.


하지만 그 스타일이 담고 있던 세계관이나 인물의 윤리까지 이어지지는 않는다.

이미지는 남지만, 그것을 지탱하는 감정이나 철학은 느껴지지 않는다.

이런 상태를 우리는 보통 이렇게 느낀다.

멋은 있는데,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

아마 이 영화가 “재미없다”는 반응을 듣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4. 관객이 지루해하는 것은 ‘액션’이 아니다

지금 관객이 피로해하는 것은 액션이나 첩보 장르가 아니다.

그들이 지루해하는 것은 단순한 세계관이다.


타자는 늘 구출되어야 하고,
악은 쉽게 구분되며,
주인공은 구조 속에서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현실의 세계는 훨씬 더 복잡해졌다.
관객은 이제 누가 옳은지보다, 왜 이 세계가 이렇게 작동하는지를 보고 싶어 한다.



5. 한국 영화라는 이유로

한국 영화라는 이유로, 혹은 익숙한 감독의 작품이라는 이유로 우리는 종종 기대를 먼저 건다.

하지만 진정한 영화의 기준은 국적이 아니라 생명력이다.

지금의 관객은 산업적 완성도보다, 세계에 대한 새로운 감각을 더 예민하게 감지한다.


〈휴민트〉를 보며 들었던 생각은 이것이었다.

영화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상상력이 멈춰 있는 것 아닐까.

낡은 상상력은 언제나 순애보와 희생의 얼굴로 돌아온다.

하지만 지금의 세계는, 그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낯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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