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는 인간을 먹고 자란다』를 읽고
요즘 밤마다 잠들기 전에 이 책을 조금씩 읽었다.
이불속에서 이북리더기 불빛만 켜놓고 한 페이지, 두 페이지 넘기다 보면
어느새 눈꺼풀이 무거워지고, 문장은 꿈처럼 번져갔다.
『AI는 인간을 먹고 자란다』(원제 Feeding the Machine) — 제목은 차갑지만, 책은 이상하게 따뜻했다.
AI의 미래를 말하면서도, 그 밑바닥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삶을 다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종종 AI가 스스로 학습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건 오해를 넘어선 은폐다.
AI의 뒷면에는 케냐, 필리핀, 인도 같은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 지역에서 일하는 수많은 ‘보이지 않는 노동자’들이 있다.
그들은 이미지와 텍스트를 분류하고, 욕설과 폭력을 걸러내며,
우리가 ‘클린’하다고 믿는 데이터의 뒷정리를 맡는다.
AI가 “학습한다”는 건 결국 그들의 지식과 감정, 언어를 흡수하는 일이다.
이런 의미에서, AI의 성장은 인간 경험의 또 다른 식민화의 과정이다.
이 책의 탁월함은 기술 담론을 단순한 비판에 머물게 하지 않는 데 있다.
저자들은 AI를 포스트식민적 체계로 읽어낸다.
과거 제국이 식민지에서 원료를 채취하던 것처럼,
오늘의 기술 자본은 인간의 언어, 감정, 노동력을
‘데이터’라는 이름의 새로운 원료로 채굴한다.
그들이 말하는 '데이터 식민주의(Data Colonialism)'는 더 이상 비유가 아니다.
우리가 매일 반복하는 클릭과 타이핑,
SNS의 짧은 감정 표현 하나까지도
AI의 배를 불리는 식민적 노동 행위로 변환된다.
그 제국은 보이지 않지만,
그렇다고 추상적인 것도 아니다.
우리의 일상 한가운데에서 조용히 작동한다.
『AI는 인간을 먹고 자란다』는 기술에 대한 공포를 넘어,
인간의 존엄이 어떻게 ‘보이지 않게’ 소비되는가를 묻는다.
AI의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윤리의 문제이며,
그 윤리는 결국 이런 질문으로 귀결된다.
“우리는 어떤 타자에게 먹이를 주고 있는가?”
처음의 질문, “AI가 인간을 대체하는가?”는 이제 낡았다.
우리는 이렇게 물어야 한다.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AI를 먹이고 있으며,
그 먹이의 대가를 치르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철학은 다시, 추상적 논리의 세계에서 우리의 구체적인 노동과 삶의 자리로 돌아와야 한다.
나는 책을 덮고 잠들기 직전, 이 단순한 사실을 다시 떠올렸다.
기계는 인간을 닮아가지만,
그 기계를 먹이는 건 여전히 인간이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