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저항의 윤리

-하루키는 전공투였다

by 라캉트

1. 90년대, 조용한 반항에 끌리던 소녀

고등학교 시절, 나는 하루키의 단편집을 처음 읽었다.
그건 마치 짧은 단편영화 같았고, 문장들은 내 안에서 오래 흔들렸다.

그때는 90년대, 한국이 ‘아시아의 네 마리 용’이라 불리던 시절이었다.
모두가 성공을 이야기했고, 대학에 가면 인생이 열린다고 믿었다.
공부와 취업, 결혼과 안정 — 삶의 설계도는 이미 완성된 듯 보였다.

다운로드.jpg 90년대 당시 내가 처음 읽은 하루키 단편 소설집


그 시절 만난 소설가 하루키는 재즈 카페를 열고, 재학 중에 결혼을 했다.

그의 행보에 눈길이 갔다.

나에겐 그의 결심이 도망이 아니라 저항처럼 보였다.
와세다 출신이라면 누구보다 안정된 길을 걸을 수 있었을 텐데...


그렇다. 그는 세상의 속도에서 살짝 물러서 있었다.
나는 그가 너무 나이브해서 좋았다.
어쩌면 그때부터였는지도 모른다.
조용히 반항하는 사람들을 사랑하게 된 건.


2. 혁명의 잔해 위에서 커피를 내리다

전공투 세대는 세상을 바꾸려 했다.
하지만 하루키는 그 잔해 위에서 자기 삶을 복원했다.


그에게 재즈는 사치가 아니라 생존이었고,
커피는 문학의 리듬이자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방식이었다.

그는 총 대신 문장을 들었고, 구호 대신 리듬으로 세상에 맞섰다.

하루키의 문학은 이처럼 일상의 정치학으로 읽혀야 한다.
그건 혁명의 실패 이후에도
존엄하게 살아남기 위한, 몸의 언어다.


3. 아버지 이후의 세계

그의 아버지는 전쟁을 통과한 교사였다.
일본의 ‘도덕’과 ‘국가’를 상징하는 인물이었고,
하루키는 그 상징계를 더 이상 믿을 수 없었다.


그의 문학은 언제나 ‘아버지 이후의 세계’에서 출발한다.
그곳에서 주인공들은 도망치지만, 그 도피는 부정이 아니라 초월이다.


폭력 대신 침묵으로,
명령 대신 고양이로 —
그는 부권의 언어를 조용히 해체했다.


하루키는 아버지를 죽이지 않았다.
대신 아버지의 세계를 초월했다.

그는 ‘아버지 없는 세계’에서도 윤리를 잃지 않으려 애쓴,
패배한 자의 품격을 지닌 어른이었다.


화면 캡처 2025-10-27 141624.jpg 아버지에 대한 가장 사적이고 내밀한 고백

그래서 그는 노년에 이르러,

마침내 아버지의 세계를 조용히 품었다.
그것은 화해가 아니라, 이해였다.


하루키는 폭력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글을 썼다.
그는 아버지를 미워하지도, 용서하지도 않았다.
다만, 그 시대의 부채를 짊어진 인간으로서
조용히 살아남는 법을 선택했다.


4. 여전히 전공투인 사람

그는 세상을 바꾸지는 못했다.
하지만 세계에 휩쓸리지 않는 법을 배웠다.

그의 문장은 지금도 느리게, 그러나 단단하게 호흡한다.

달리고, 커피를 내리고, 고양이를 쫓으며 —
하루키는 여전히 전공투다.

다만, 아주 작은 목소리로.

KakaoTalk_20251027_142635.jpg 나의 작은 우주, 내 전부, 나의 고양이 칸트

어쩌면 나는 여전히 그 작은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산다.
달리고, 쓰고, 고양이를 돌보는 이 일상 안에서
나는 나만의 ‘조용한 저항’을 계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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