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월한 선택

당신의 경험이 올바른 선택에 지대한 공헌을 한다. 부제는 거창하네.

by 생각하는냥

지난 금요일 퇴근길이었다. 어쩌다보니 직장동료가 타는 버스를 함께 타게 되었다. 원래 타던 버스가 아니었다. 조금 돌아 가기는 하나 어차피 목적지에 도착하니 이야기 좀 하자는 듯 보여서. 물론 회사일이다.

화장실에 들릴까 말까 좀 애매한 상황이었는데, 30분 정도는 충분히 버틸 수 있을 것 같았고 기다리게 하는 게 미안해 그냥 버스에 올랐다.


그런데 다른 날에 비해 칼퇴에 가까운 퇴근길이었고 더우기 금요일이라서 그랬던 걸까? 길이 평소와 다르게 막혀서 지연되고 있었다. 그리고 이야기를 하다보니 알고 있던 버스가 아니라 다른 길로 가는 버스였던 게다. 동료에게는 이리 가든 저리 가든 어차피 집에 가는 버스이기는 했으나 내게는 전혀 다른 길이었다.


갈아타야할 시점이 계산이 되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고 방광에서 너 이대로 가다가는 큰일을 치를 수 있다는 싸이렌이 울리기 시작했다. 최대한 가까운 곳에서 지하철로 갈아탈 셈을 해보니 세브란스 병원 근처가 적합했다.


일단 다음주에 보자는 인사를 하고 나서 하차했다. 우측으로는 약 200m 전방에 신촌역이 보였고 좌측으로는 100m 전방에 세브란스 병원이 보였다.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했다. 병원 화장실이냐, 지하철 화장실이냐. 어차피 지하철로 가야 하니 가던길로 가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라는 일반적인 결론이 내려졌다.


그런데 문제는 단 한번도 가보지 않은 역이라는 데 있었다.

병원은 화장실 위치를 모른다 하더라도 일단 1층에 들어서면 금새 찾을 수 있는 위치에 있지만 우리나라 지하철의 경험상 역에 따라서는 화장실 찾는 게 보물찾기에 가까운 곳이 더러 있었다.


보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결론은 이 위급한 상황에서 화장실을 찾아 헤매기보다는 좀 더 돌아가야하지만 찾기 쉬운 병원이 훨 낫다로 내려졌다. 결국 병원으로 향했고 댐은 무너지기 직전 방류를 함으로써 국내 수력발전에 지대한 공험을 할 수 있었다.


병원을 나와 다시 신촌역으로 향해 가는데 세브란스병원 근처를 다녀본 사람은 누구나 알겠지만 2호선 신촌역이 아니라 경의선 신촌역이다. 지하철을 타러 가는데 희한한 게 건물 밖에는 신촌역이라고 분명히 써 있는데 깜깜한데다 인적이 드물어 입구를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지하철역이 분명하니 사람들이 드나들법도 한데 사람이 없었다. 개통이 안된 역인가? 그럴리가.


낯선 이방인은 결국 입구를 찾지 못하고 2호선 신촌역을 향해 먼길을 또 돌아가야만 했다.


조금만 잘못 판단해서 신촌역 화장실로 향했더라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를 생각하니 그저 헛웃음만 터져 나올 뿐이다. 그래도 나름 신촌역인데 인적이 이렇게 드물줄이야. 역 입구를 찾지 못해 헤맨 건 이 역이 난생 처음이다. 우리나라 지하철을 믿지 않은 건 탁월한 선택이요 결정이었다.


그리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가급적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전에는 좀 애매하게 마려운 경우에는 화장실을 꼭 들려야 한다는 교훈이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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