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의 전개

상상은 현실에 적응을 한다. 대개는

by 생각하는냥

어릴 적 상상 속의 나는 저 멀리 가 있었다.

하늘을 날고 우주를 휘젓고 다니는 영웅물에 심취해 있었던 터라 당연한 결과였다. 지구 정복을 꿈꾸지 않은 것만도 얼마나 다행인가. 아마도 꿈이 이루어졌더라면 지구는 연일 나의 압박으로부터 독립전쟁을 치르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좀 더 커서의 나는 조금 덜 멀리 가 있었다.

전투기나 헬기를 조종하는 최고의 파일럿이 되기를 희망했었고 혹시라도 기술이 발전하여 로보트 태권브이 같은 로봇이 나온다면 조종사로서의 자격이 주어지길 미세한 확률로나마 바라고 있었다. 그나마 눈이 나빠진 탓에 항공대로의 진학은 어려웠다. 다행인 건 아직도 로보트 태권브이는 개발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현실을 아는 나이가 되어서는 지극히 평범한 상상을 하고 있었다.

그냥 남들이 살아가고 있는 평범한 가정을 거느린 부족할 것 없이 돈 잘 버는 가장이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나이를 먹어가며 알아버렸다. 이 소박해 보이는 꿈조차도 그리 현실 가능성이 쉽지만은 않다는 것을. 그리고 평화로워 보였던 부모님의 어깨가 실은 그리도 심각한 무게의 짐을 짊어지고 계셨다는 것을. 심지어는 삼시세끼 밥해먹고 설거지하고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는 것조차 그리 쉬운 일은 아니라는 것을 어른이 되어서야 알아버렸다. 아들 하나라고 너무도 곱게 길러진 탓이다. 온실 속의 화초는 밖이 이렇게 험난한지 몰랐다.


최근의 난 그 평범한 상상보다는 잡다한 생각에 빠져 산다.

너무도 잡다한 생각들이 뒤죽박죽 섞여 있다. 개중에 하나는 연일 터지는 정치권의 불합리한 매국 행각에 분노한다거나 혹은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에 심취해 푹 빠져본다거나 혹은 말 같지도 않은 단어들을 조합하여 글을 써본다거나 혹은 드라마를 보며 개연성이 없는 장면들을 보게 되면 '내가 써도 저보다는 잘 쓰겠다'를 연거푸 되뇌는 등의 매우 소소한 기타 등등 기타 등등이다.


그러한 생각들 중에서도 가장 선택 장애가 발생하는 생각은 "점심때 뭐 먹지?".


그나마 오늘은 선택 장애에서 해방인 건가? 중복이니까 점심 메뉴 선택이 너무 뻔하지 않은가. 다만 이 필수 상황을 방해하는 게 하나 있다면 자리 선점의 문제겠지. 그러니까 오늘은 그 어느 때보다도 먼저 나가는 걸로. 오늘은 예약도 받지 않을 터이니.


그런데 말이다.

가만 생각해보니 여전히 상상 하나를 버리지 않는 영역이 있기는 했다. 그냥 이건 현실 가능성을 떠나서 가지게 되는 상상일 뿐. 그래서 머리가 빨리 자라나?

그런데 참 불만인 게 머리카락이 빨리 자라면 뭐하나 머리숱이 풍성하지 않은데. 조물주는 끝까지 심술궂다. 그냥 사람 편안하라고 다 주면 될 터인데 꼭 조건을 따진다거나 완벽한 걸 주지를 않는다.


매정한 사람.

아, 그대는 신이었지.

미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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