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동실 안의 오랫동안 얼려져 있던 생선을 발견하곤 이혼을 준비하는 오래된 부부가 연상된다.
자주 눈을 마주하지 않으니 곁에 있어도 있는 줄 모르고 방치하고 있다가 어느 날 냉동실 정리하다 발견한 생선처럼 오래 전의 추억을 꺼내 들다 풋풋하고 뜨거웠던 사랑을 소환해 낸다.
그리고 어떤 이는 그 사랑을 다시 이쁘게 다듬어 요리할 것이고 그러나 어떤 이는 과감하게 버릴 것이다.
"여보, 냉동실에 생선 있어."
"응"
"이거 해줘."
"응, 다음에"
그렇게 생선은 다시 냉동실 깊숙한 곳으로 들어간다.
#언어는잘못없다
언어란 같은 문장임에도 불구하고 누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쓴소리가 될 수도 있고 막말이 될 수도 있다.
가령 우리 코 앞에 사람이 마실 수 있는 식수가 있다고 하자.
누군가는 그 물을 컵에 담아서 마시라고 줄 것이다. 목마른 사람에게는 가뭄 속의 단비 같은 보약 같은 물이다. 그러나 어떤 이는 그 식수에 걸레를 담갔다가 물을 줄 수도 있다. 이걸 왜 마시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참 나쁜 놈이다.
언어라는 식수를 그냥 컵에 담아 줄 것인지 아니면 걸레를 담갔다가 줄 것인지는 사람의 문제다. 언어는 아무런 잘못 없다. 그것을 구사하는 사람의 주댕이가 늘 문제다.
대체로 사람의 인성은 어린 시절에 형성된다고 한다. 그리고 한번 굳어진 인성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한다. 인류가 그 오랜 세월의 역사를 유지해왔으면서도 인성이라는 걸 간별 해내지 못한다는 건 참 아쉬운 일이다. 인성만 구분할 수만 있더라도 여의도의 쓰레기 다수는 진즉에 정리가 되었을 텐데 말이다.
세상에 인성간별사가 있다면 세상의 모든 번잡한 문제들은 신속하게 해결될 것이다. 식수에 걸레를 담가 주는 그런 자들을 모조리 색출해 저 깊은 바다로 던져 버리면 되었을 테니까.
오늘따라 내 표현도 약간 세다. 쓴소린지 막말인지.
쓴소린 듯 막말인 듯 애매한 이유는 막말하면 깊은 바다로 던져질 거 같아서. 조금 애매하면 깊은 바다가 아닌 미녀 가득한 해변의 바다로 던져질지도 모를 거 같아서. 빅 픽처를 그려보았는데 현실 가능성은 없다. 그냥 상상의 바다다. 자꾸 현실 가능성 없는 생각만 하니까 상상이라기보다는 망상일 듯싶다. 닉을 바꿔야 하나. "망상하는냥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