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과 끝에 대한 보고서
글쓰는 것보다 소제목 쓰는 게 훨씬 어렵다.
늦은 밤 야식의 유혹은 술취한 김유신을 천관녀의 집으로 데려간 애마의 본능처럼 나를 냉장고 문 앞으로 이끌었다. 김유신이 애마를 베어버린 것처럼 허벅지를 찌르기라도 해야 하나?
이왕 간 김에 문을 여니 핫바와 냉동만두가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글썽이며 어서 데려가달라고 애걸복걸이다. 손을 뻗어 그들의 손을 잡았다. 그때였다. 뽀올록 튀어나온 배장군이 시야에 들어오며 고개를 절레절레 거리는 게 아닌가. 순간 최면에서 빠져나오듯 과감하게 그들의 손을 뿌리치며 문을 닫았다.
뒷걸음질을 치려는데 어디선가 비닐 부시럭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생라면이 바삭바삭한 온몸에 MSG향이 가득한 스프를 뿌려대고 유혹의 밸리댄스를을 추고 있는 게 아닌가. 와사삭 거림과 강렬한 MSG의 향이 저장된 기억의 사물함을 열어 자극하니 이미 침샘은 넘쳐 흐른다.
달에 착륙하여 첫 걸음을 내딛 듯 사뿐히 한 걸음 뻗어 보았드랬다. 그때 또다시 어둠을 헤치고 달려나온 배장군은 반쯤 혼이 빠져나가 있는 나의 뺨을 후려치며 뽀올록이의 위험함을 알린다.
또 다시 뒷걸음질을 치고 나니 손에 잡힌 건 물병 하나.
뚜껑을 따고 물배를 채우니 그제서야 우리의 배장군 샤워라도 한 듯 개운해하며 포만감에 만족해한다. 몇분이나 가겠어. 또 다시 배장군을 전쟁터로 호출할 순 없어 두팔 두다리 휘날리며 침대로 향했다. 하루의 마무리가 이리도 험난하나.
눈을 감고 그리고 눈을 다시 떴다.
어라라라라라.
잠깐 눈을 감았다 떴을 뿐인데 벌써 아침이었다.
알람은 울리지 않았던 걸로 보아 알람 시간보다 일찍 깬 듯 싶어 팔다리를 쭉쭉 뻗어 기지개를 맘껏 폈다.
10분만, 아니 5분만, 아니 1분만 더 자까.
바깥이 아직은 덜 밝은 것으로 보아 깨야할 시간은 아닌 듯 싶어 눈을 감으려는데 그제서야 알람이 울렸다. 늘 이런 식이다. 뭐 좀 할라치면 못하게 한다. 역시나 늘 그렇듯이 조물주는 심술을 또 부린다.
"x시 xx분 입니다."
아뿔싸. 원래 맞춰놓은 알람시간보다 5분이나 늦게 울리는 게 아닌가.
그렇다. 원래 알람은 제 시간에 울렸는데 그 때 자느라 못들었던 것이다. 일찍 일어난 게 아니라 아마도 약 3분 정도 늦게 일어난 셈이다. 1분만이라도 더 자고 싶었지만 깊은 한숨을 내쉬며 상반신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아주 잠깐 멍때려본다. 멍~~~~
알람이 계속 울리니 아내님 깨실까봐 서너걸음 떨어진 폰으로 냉큼 기어가 알람을 껐다.
또 이렇게 하루의 시작인가?
어제 하루가 끝나고 이제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되는 순간이다. 다른 듯 하지만 매우 친숙한 하루가 또 시작될 것이다.
모든 것이 그렇다.
책을 펼치면 첫장이 나오고 마지막장을 덮으면 그걸로 끝인 줄 알지만 책장 속의 또 다른 책을 꺼내 읽거나 혹은 읽었던 책을 또 다시 읽을 수도 있다. 술자리도 그렇다. 첫잔을 시작하고 막잔으로 술자리를 파장하지만 또 다시 술자리는 이어진다. 사랑도 이별을 만나 그걸로 끝일 줄 알지만 우리는 또 다시 사랑한다.
모든 시작에는 모든 끝이 있고 모든 끝에는 또 다른 시작이 기다리고 있다. 행복도 즐거움도 아픔도 시련도 끝난 줄 알지만 또 다시 시작이다. 살아있는 동안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가끔 시작을 하면 끝이 두려워 시작도 하기 싫을 때가 있다. 특히 사랑이 그렇다. 그 이별이 두려워 사랑하지 않겠노라고 하는 이가 가끔 있다. 하지만 그 끝은 그저 잠시 쉬어가는 과정일 뿐 이별이 마지막은 아니다. 다시 사랑은 이어진다. 같은 이와 만날 수도 있고 혹은 또 다른 스타일의 아름다운 이를 만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게 삶은 계속 이어진다. 두려움에 멈춘다면 당신의 살아있는 오감이 참 아깝지 아니한가.
듣고 보고 맡고 맛보고 느끼는 나의 오감에게 사랑이라는 감정을 더이상 전달하지 않는다는 것은 자기학대다. 생생하게 살아 있는 한 모든 것이 멈추지는 않을 것이니 끊임없이 사랑에 취하자.
모든 것에는 시작이 있고 끝이 있지만 살아 있는 동안만이라도 끝이란 없는 것이니.
가만 있자. 오늘 나의 밧데리는 어디에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