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관도 없는 결재를 올리다 잡스러운 백태클을 당했을 때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
배는 무슨 죄일까? 많은 사공을 태운 게 죄라면 죄일까.
그러나 배가 사공을 많이 태우고 싶어서 태운 건 아니다. 배는 늘 거기에 있을 뿐이고 그 많은 사공을 태운 것은 선주다. 배는 사공이 가자는 대로 가는 것일 뿐.
전자 결재 시스템을 이용해 제휴사와의 계약서에 대한 기안을 올리기로 되어 있었다. 원래는 타 부서인 B팀에서 진행을 했기에 그 팀에서 해야 하는 건데 어찌하다 보니 내게 떨어졌다. 왜? 왜? 몰라.
계약서는 제휴사에서 작성한 것이고 해당 계약서에 대한 내용을 진행한 것은 B팀이고 내용 최종 수정을 하고 검토한 것은 본부장이었다.
내가 관여한 곳이라곤 중간에서 건네주고 건네주는 다리 역할뿐이었다. 근데 난 다리도 부실한데 왜 나한테 다리 역할을 주는 걸까. 그렇다고 다리 찢기도 잘하는 것도 아닌데. 왜 가만있는 내 다리를 쫙쫙 찢으려는 게냐.
그러나 이내 반려되었다. 대표님 왈 중간 합의 과정에 B팀의 부장을 넣으라는 이유였다. 그리고 그 B팀의 부장이 넣어지면서 다른 중간 결재자들의 백태클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실제 기안에 필요도 없는 문구 수정 요청이 들어오기 시작하는데 한 사람을 통과하면 또 다른 사람이 태클을 걸어오고 통과가 되면 또 다른 태클이 들어왔다.
여보세요. 그냥 니들이 알아서 하실래요?라는 말이 목 구녕의 목젖에 걸려 달랑달랑거렸다. 무슨 수륙양용차라도 탄 듯 그들은 나를 산으로 산으로 이끌어갔다. 깊은 산속 숲 속에 자꾸 왜 날 데리고 가는 건지 이거야 원.
결정장애 있는 사람들을 대신해 음식을 주문했더니만 중간에 메뉴를 바꾼다거나 혹은 주문이 잘못 들어가 혼선으로 음식을 마냥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한 달 가까이 지속된 게다. 나 이제 밥 좀 먹자.
개인적으로는 이번이 마지막일 거라고 생각하나 또 모른다. 누군가의 백태클은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니까. 만약 누군가 또 그런다면 엿을 한뭉큼 사다가 그의 입에 가득 먹이리라.
요즘 들어 자꾸 배가 산으로 가는 일이 잦다. 그래서 그런가? 요즘 들어 내 배도 볼록볼록 나온다. 이런 된장 고추장 간장 쌈장 같으니.
상처가 난 팔꿈치에 밴드를 바르고 난 뒤 손에 로션을 발랐다. 그리고 가만히 있는데 어디선가 냄새가 났다. 킁킁. 이게 대체 무슨 냄새? 설마 밴드에 파스라도 묻어 있는 건가? 상처에 파스를 바르면 어째. 팔꿈치를 들어 킁킁하고 냄새를 맡아보았는데 냄새는 나지 않았다. 참, 나 로션 발랐지?
머리가 온통 잡스럽다.
잡스 형님은 왜 IT를 발전시켜서 이런 고초를 겪게 만드시나.
그래서 잡스였나? IT는 잡스럽다고. 누군지 몰라도 작명은 참 한국적으로 잘하셨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