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 풍경

어느 비오는 날 출근 풍경

by 생각하는냥

비님이 이렇게 오시라고 조물주님이 어제 그 날궂이를 하셨나 보다.


밝아야 할 아침이 어둡다. 그리고 빗방울은 굵어 우산을 펴니 후드득 소리를 내며 드럼 두드리듯 우산을 때린다. 아이고 좋아라.


걸어서 출퇴근을 하다 보니 평소와 같은 차림으로는 신발이며 바지며 젖을 거 같은 비였다. 이런 날에는 반바지와 샌들 차림이 딱이지만 출근 시간에 쫓겨 챙길 틈 없이 그냥 나왔다. 몇 걸음 걸어보고 계산기를 두드려보니 이 정도면 신발이 젖을 정도는 아니라는 예측 답안이 나왔다.


어쩌다 보니 덩치가 산만한 고등학생이 앞에 선다. "MLB"라는 문구가 적힌 하얀 반투명 우산은 새하얀 원피스를 입은 아가씨에게나 어울릴 법 한데 흡사 산적 같은 녀석이 쓰니 여자 형제껄 약탈한 듯싶었다. 반바지에 슬리퍼 차림의 고등학생은 거칠게 없었다. 물 웅덩이가 나와도 탱크 지나가듯 싹 다 쓸고 지나가 버린다.

부럽다 고등학생.


늘 가던 안양천길에 들어서니 "나를 지르밟고 가든가 아니면 뛰어넘어 보든가" 라며 딱 하니 버티고 서 있는 큰 웅덩이 여럿이 게임 속의 장애물처럼 줄지어 서 있었다. 밤새 내린 비에 쑥쑥 자란 웅덩이들은 동네 깡패처럼 삥 뜯을 준비를 하고 있는 듯했다. 이 길을 지나려거든 너의 신발을 기필코 젖게 만들겠다는 아주 질 나쁜 녀석들이다.


"A에서 B까지 가는데 빗물에 하나도 젖지 않고 지나가야 한다. 그러려면 어떻게 건너야 할까요?"라는 초등학교 수학 문제를 접한 듯 여러 각도로 재며 머리를 굴려 보았다.


그렇게 망설이는데 뒤에서 오던 아가씨가 웅덩이 모서리 공간을 밟고 지나가는 게 아닌가. 짝짝짝. 정답입니다. 잘 모르는 문제가 나오면 힌트를 보거나 그도 아니면 정답을 보면 되는 거 아닌가.


정답녀의 뒤를 졸졸졸 따랐다. 마치 그녀의 강아지가 된 마냥. 혹여라도 새까만 아저씨가 뒤를 따르는 게 변태여서가 아니라고 이해해주겠지?


가다 보니 어인 또 다른 하얀 반투명의 "MLB" 우산이 보였다. 또 등치가 산만한 남자 사람이었다. 저 산적도 여자 형제의 우산을 약탈했겠지?


우산에 시선을 빼앗긴 순간 뭔가 철썩하는 느낌이 들더니 신발 아래로 찬기가 불쑥 들어오는 게 느껴졌다. 정말 순간이었는데 물 웅덩이를 밟고 말았다.


사무실에 도착하니 신발과 바지는 젖을 대로 젖어 있었다. 바지를 벗으면 안 되겠지? 바지를 걷어 올리고 양말을 벗었다. 바지는 몸의 열기로 마르는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젖었다는 핑계로 양말을 벗은 채로 사무실을 휘젓고 다니니 정말 편하다.


아예 다음 주부터는 양말을 벗고 다닐까?


킁킁

앗. 발 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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