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크림 사주세요.

사준다고 하고 사주지 않는 이유가 뭘까.

by 생각하는냥

지난주 금요일이었다.

본부장도 휴가를 가고 우리 부서가 있는 방은 자유의 방이 되었다. 그 전에도 엄격하게 운영이 되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눈치 볼 사람이 한 명 줄었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환영할 일이다. 짝짝짝


점심을 먹고 나서 의자에 앉아 의자에 등을 붙이니 잠이 소르르 왔다. 잠깐 눈만 감고 있었을 뿐인데 잠신에게 납치될 무렵이었다. 갑자기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고 깜짝 놀라 눈을 뜨니 여직원의 당황한 듯한 눈빛과 마주쳤다.


아냐. 나 잔 거 아니야 라고 잠깐 눈을 감고 있었던 것뿐이라고 하기에는 심한 쌍꺼풀이 생겨버렸다. 멋쩍은 상태에서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은 '아이스크림 사주려고 들어왔어?'. 다행히 옆에 있던 다른 직원들이 동조하였다. '뭐? 아이스크림 사준다고?'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아이스크림은 나의 최애 음식이 아니다. 단지 쑥스러운 상황을 타개해볼 셈으로 던진 말이었을 뿐이다. 옆에서 누군가가 동조해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결국 분위기는 여직원이 아이스크림을 사주는 걸로 되었고 여직원은 사주기로 했다.


그리고 그 날로부터 그러니까 금요일, 토요일, 일요일, 월요일, 화요일 벌써 5일이 지났다. 그녀로부터 얼음 한 조각조차 받아보질 못했다. 뭔가 바람을 맞은 듯한 느낌이랄까? 조금 전까지 잊고 있었다. 두 시간 전쯤 회의가 끝날 때까지는 말이다.


팀 회의가 잠깐 있었고 마지막으로 본부장의 간단한 인사말이 있었다. 날도 더운데 다들 몸 관리 잘하고 분위기 처지지 말자는 말이었다. 그대로 회의가 끝나려 할 때 본능적으로 방언이 터지고 말았다. 아이스크림을 사준다는 여직원을 향해 '아이스크림 언제 사줘요?'라고 물은 것이다. 아, 원래 이렇게 집요했었나. 다시 말하지만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어서도 아니고 나의 최애 음식도 아니었다. 그냥 회의 마지막에 웃자고 던진 말이었다. 여직원은 씩 웃더니 다시 한번 사주겠노라고 약속을 하였다.


그러나 두 시간이 지난 지금도 여직원은 여전히 자리에서 본인 업무 중이다. 아니, 내가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어서는 아니긴 한데 사준다고 하고는 왜 안 사주는 거야. 그런데 왜 난 먹고 싶지도 않은 아이스크림을 계속 사라고 재촉하고 있는가. 이러다 진상 등극되는 건 아니겠지.


방문을 열어보니 그녀는 여전히 모니터를 열심히 바라보고 있다. 혹시 말이다. 설마 모니터에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에 대한 법안이 떠 있는 건 아니겠지?


미안해. 나 아이스크림 안 먹을게.

keyword
작가의 이전글소소한 하루와 소소하지 않은 폭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