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괄약근은 안녕하십니까
'2020년도'라 쓰니 애교스럽다. 쓰기도 편하고 익숙해서 이런 느낌이다. '에구에구, 많이 많이, 싫어 싫어, 좋아 좋아, 몰라 몰라'라고 하듯이 말 그대로 애교가 흘러넘치는 느낌이다. 별로 그런 느낌 없다고? 뭐 그러든지 말든지 여기선 그렇게 우겨본다.
그런 새해의 첫 근무일이었다. 근무 첫날부터 일찍 집을 나선 탓에 여유로운 걸음으로 출근길을 걷고 있었다. 엘리베이터도 바로 와준 덕에 순조로운 하루가 시작되는 듯싶었다. 그 방심하고 있던 찰나 좌측 구석진 곳에서 익숙하지만 낯선 소리가 들려왔다. 대개는 일상에서는 들을 수 있는 소리지만 엘리베이터라는 공간에서는 대체로 듣기 어려운 소리였다. 엘리베이터라는 공간 내에서는 처음이었다.
"뽕"
이런 대형 참사가 있을 수가 있나. 고개를 돌리면 소리의 근원지와 바로 마주할 수 있었다. 자세히는 보지 못했지만 실루엣은 약 4050이었다. 그도 어쩌면 나름의 괄약근에 힘 조절을 하고 있었을 것 같다. 설마 나오는 대로 질렀을라고. 소리 없이 하려다 그만 실패하고 말았겠지. 그러든지 말든지 어쨌든 소리는 이미 그 작은 공간에 울려 퍼졌고 빠르게 공기를 오염시키고 있었다.
오염원이 다 퍼지기 전에 재빨리 숨을 들이마신 후 숨을 멈췄다. 혹시라도 조금이라도 가스가 몸안으로 들어올 수도 있는 것 아니겠는가.
첫 번째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해당 층에서 내리는 사람의 뒷모습을 보며 어찌나 부럽든지. 이 무심한 엘리베이터는 하필이면 이런 때 야속하게도 대부분의 층에 멈춰 선다. 덕분에 박태환도 아니고 더 이상 숨을 참을 수만은 없어 결국 숨을 내뿜으며 다시 숨을 들이마셔야 했다. 혹시나 많은 양의 공기가 들어올까 봐서 짧게 짧게 들이켰다 멈추고 들이켰다 멈추고를 반복하며. 아악 어지러워. 그의 가스 일부가 몸안에 들어왔겠지? 우울하다. 매우 매우.
사무실 층에 다다르자 문이 열리고 급하게 내리려는데 어쩔까 나. 소리의 주인도 따라 내리는 게 아닌가. 그러면서 하필이면 그와 눈이 마주치며 나도 모르게 그만 욕설이 튀어나왔다. 물론 입으로는 뱉은 욕설은 아니었다. 머릿속에서 수없이 튀어나왔으며 눈앞을 채워 앞을 가릴 만큼은 튀어나왔다.
하필이면 같은 층 사람이었고 그의 얼굴을 봐버린 것이다. 그동안 그의 존재감을 별로 인지하지 못했던 사람이었는데 이제 이런 식으로 기억되었으니 그와 마주칠 때마다 '방귀 뽕'이 연상되지 않겠나. 이게 새해 첫날의 출근길 풍경이라니 아마도 며칠 전에 조물주님에게 질러댄 외침에 대한 답변이겠지?
신은 나에게 이런 걸 말했을 것이다. '엘리베이터 내려서 너의 건강을 위해 계단을 이용하려무나'. 그런데 이 둔한 녀석은 신의 계시를 바로 깨닫지 못하고 숨을 참는 어리석은 선택을 했으니 신이 주신 기회를 날려버린 셈일까나? 아니, 내가 바라는 건 이런 거 말고 다른 거 다른 거.
또 조물주는 내가 원하는 건 안 주고 이상한 것만 던져주고 가 버렸다. 몹쓸 사람. 아니지 그대는 신이지. 어쨌거나 분명한 거 하나는 그 소리의 주인보다 나의 괄약근은 건강하다는 거겠지.
안녕. 괄약 근아.
새해 당신의 괄약근, 안녕하십니까?
추신 : 사실 이 글은 아침에 쓴 건데 끼니와 더불어 입맛을 날려버릴 거 같아 참았다가 이왕 잠에서 깬 김에 새벽에 올려봅니다. 아, 뭐라고요? 곧 끼니 먹을 건데 이 뭐하는 짓이냐고요?
음..... 미안.
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