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해도 무덤덤해지는
아파트를 나서려는데 주차장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머뭇거리는 이가 있었다. 딱 봐도 주차를 잘못한 눈에 띄는 차 한 대 때문에 자신의 차를 못 빼고 있는 모양새였다.
그냥 지나치려다 채 몇 걸음 걷다 뒤돌아섰다. 착하니즘이 또 돋았나 보다.
마치 전투에 대비하는 중세 기사의 철갑옷을 장착하기라도 하듯 주머니에서 장갑을 꺼내어 장착하곤 잔뜩 폼을 부렸다. 장갑을 장착하곤 습관처럼 주먹을 쥐곤 양 주먹을 부딪힌 후 차 앞에 섰다. 아, 멋져 버려.
허리를 잔뜩 숙여 가로 주차되어 있던 차량에 체중을 실어 밀었다. 으쌰 으쌰.
차량은 중소형 차량 밖에 되지 않았는데 제법 무뎠다. 끙끙.
옆에서 머뭇거렸던 여자 주인공도 같이 달려들어 밀었다. 아니지 아니지. 이러면 그림이 안 살잖아. 잔뜩 독무대를 점령하려 했던 남자 주인공이었는데 쪽도 못 쓰고 낑낑대자 여자 주인공이 도와주는 형태라니. 언니야. 나 혼자서도 충분히 했는데 말이다.
충분히 밀어서 차가 빠져나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고 가려는데 여자 주인공이 감사하다는 말을 던졌다. 남자 주인공은 뭐 이런 걸로 그러냔 투로 아무 말 없이 씩 웃고 말았다.
뭐 오다가다 보면 너무 평범해서 금세 잊어버릴 것 같은 얼굴의 남자 주인공은 오늘도 이름 모를 착한 이웃집 아저씨의 역할을 톡톡히 하곤 웃으며 웃으며 멀리 사라져 갔다. 아, 저기 커피 기프트콘이라도 쏴달라고 애원할 걸 그랬나?
2020년 02월 20일, 0과 2로 사이좋게 주거니 받거니 한 뭔가 있을 것 같은 하루는 착한 이웃집 아저씨 코스프레도 그리고 감사하단 말도 그냥 무덤덤하다. 무언가에 쫓기듯 하루는 어제와 같이 그제와 같이 그렇게 바쁘게 달렸고 정신을 차려보면 이미 하루가 다 가고 잠을 청해야 할 즈음이 된다. 내가 뭘 했지?
삶이 무뎌지니 뭘 해도 그냥 모든 게 무덤덤하다.
삶이 무뎌지니 뭘 해도 무덤덤해진다는 이 말, 문득 박기량 치어리더의 표정이 떠올라 괜스레 웃음이 터진다.
몇 해전 유명한 짤이다.
"롯데 치어리더 짬밥"이라는 건데, 롯데 선수가 실책을 했을 때 치어리더들의 표정을 생생하게 캡처한 것이다. 당시 그녀들의 경력이란다. 각 2년 차(박예진) 1년 차(안지현) 11년 차(박기량).
성격상 포커페이스를 하지 못해 겉으론 안지현 치어리더처럼 웃었다 울었다 하루에도 수십 번 변하는 얼굴이지만 그럼에도 생을 대함에 있어서는 한참 전에 무덤덤한 박기량 치어리더처럼 되어 버렸다.
아, 그럼 뭐 어때. 이쁘기만 하고만. 무덤덤하면 뭐 또 어떠리.
그래도 내일은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