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라 하는 배우 김희애가 "부부의 세계"를 찍는다고 했을 때, 왜 또 하필이면 불륜 드라마냐며 투정을 부렸다. 그 좋은 연기력으로 왜 자꾸 불륜 드라마에 재능을 소비하는 것인지. 투덜투덜. 그래서 첫회부터 볼 생각을 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사람들 사이에서 드라마 얘기만 나오면 "부부의 세계"이야기뿐이다. 호기심 많은 사람에게 자꾸 호기심을 던지니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불륜녀로 나오는 한소희라는 배우의 사진이 인터넷에 도배되며 그 궁금증이 더해졌다.
처음엔 그저 뻔한 불륜 드라마겠지 싶었는데 첫회 마지막 즈음 남편의 불륜을 알아차리는 장면의 전율은 도저히 잊을 수가 없다.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바람도 바람이지만 그보다 더 추악한 것은 지금껏 믿어왔던 여주의 주변 사람들마저도 철저하게 배신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의 전율이었다. 그 상황의 몰입은 김희애가 아니라면 도저히 해내기 어려운 것이었다. (이 장면 너무나 소름이 돋아 표지 사진으로 올려본다.)
그리고 빠져들어버렸다. 왜 김희애가 이 드라마를 선택했는지를 알아버렸고 왜 사람들 사이에서 이 드라마 얘기를 하는 것인지를 알아버렸고 다음 회를 도저히 끊을 수 없다는 것도 알아버렸다.
회를 거듭할수록 남편 역의 이태오(박해준 분)의 병적인 자기애와 더불어 지선우(김희애 분)의 자기 방어를 위한 처절함이 돋보인다.
매회가 전쟁이고 매회가 생존을 위한 사투다.
이제 겨우 7회가 끝났다.
6회까지 보고 나니 대전이 마무리되는 듯싶었다. 그새 끝나나? 16부작인데?
그러나 6회까지는 겨우 1차 대전에 지나지 않았다.
7회부터는 2차 대전을 향한 전운이 감돌며 새로운 양상을 띠더니 그 포문을 느닷없이 연다. 그리고 8회의 예고편은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될 것을 예고한다.
남편 역의 이태오는 상당히 편집증 적이다. 이혼한 전처의 속옷과 향수 등을 고스란히 그대로 불륜녀 여다경(한소희 분)에게 세팅을 한다. 보는 순간 이런 미친놈이 있나 싶을 정도로 경악하고 만다.
이 드라마가 이제 겨우 반이 끝나는 시점인데 남은 반에서는 어떠한 전개로 진행될지는 모르겠다. 원작이 있다고 하는데 미리 검색이라도 해볼까 싶지만 아무래도 해외 원작이랑은 또 다르게 구성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기존의 불륜은 너무도 뻔했는데 표현이 너무 과하기도 하지만 그래서 드라마로서는 몰입이 더 잘 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나의 자극적인 걸 맛보면 그다음엔 좀 더 자극적인 걸 원하게 되는 건 너무도 본능적이지만 어쩔 수 없지 않은가.
그래서 그런가? 이 드라마, 마약 같은 드라마다. 끊으려면 초반에 끊어야지 이미 본 사람은 끊지 못하는 드라마다. 오늘 저녁은 장총을 든 김희애를 볼 수 있다. 와, 저건 또 대체 무슨 장면인 거야? 호기심이 많은 사람으로서 오늘 저녁 채널은 너로 정할 수밖에 없게 한다.
여기까지가 "부부의 세계"에 빠져버리게 된 고해성사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빠진 듯한 느낌은 지울 수가 없다. 그게 뭘까.
불륜을 소재로 한 드라마 중에 너무도 가슴 저미는 아련한 작품도 있다. 김현주, 지진희의 "애인 있어요".
김현주와 지진희가 등장할 때마다 가수 "류"의 "세월"이 흘러나오면 일단 가슴을 살살 간지럽힘을 당하며 화면 몰입이 시작된다. 그리고 김현주의 애틋한 눈빛을 보고 나면 잔잔하면서 강렬한 심장어택을 당할 수밖에 없게 된다. '뭐 이딴 드라마가 다 있어.'라며 빠져들었던 드라마다.
김현주는 쌍둥이 여동생 역과 기억상실 전의 본캐, 기억상실이 된 본캐, 그리고 기억을 찾아가는 본캐의 복잡 미묘한 캐릭터의 성격을 너무도 잘 표현하여 그 해 장편드라마 부문 여자 최우수상을 받기도 하였다.
"부부의 세계"가 끊임없는 전쟁을 예고하고 있는 가운데 뭔가 빠진 듯한 그 느낌, 그 조미료는 아마도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으로는 "애인 있어요"의 애잔한 김현주의 눈빛 연기가 아닐까 싶다. 김희애가 김현주를 넘어선 배우는 맞지만 대한민국 정서상 헤어진 부부긴 하더라도 십 년 넘게 살아온 부부의 애틋함 정도는 보여주는 게 마땅하지 않을까 싶다는 것이다.
서로 볼 꼴 못 볼 꼴 다 보여주고 헤어진 마당에 애틋함 따위가 있겠냐마는 그래도 아무리 원작이 외국 꺼라고는 하더라도 한국 특유의 정서인 애틋함은 전혀 없고 남편 이태오의 편집증적인 장면들에 가려져 자칫 드라마가 선을 넘어서게 되는 것은 아닐까 싶어 염려가 되기도 한다.
이제 반을 지나는 마당이니 어떤 전개가 될지는 모르겠다만 사이코적인 장면까지 집어넣은 마당에 이제 와서 애틋한 장면이 삽입되는 것은 이제 개연성을 떨어트리는 요소로 부작용이 일어날 수도 있긴 하다.
그나저나 저녁 방영 시간까지 대체 얼마를 기다려야 하는 걸까. 기다림에 지쳐 이 글도 쓰는 건데 이 글도 마치고 나면 대체 뭘 하면서 기다려야 하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