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어느덧 4월 중순을 조용히 지나간다.
..... 7, 6, 5, 4, 3.....
파란색 신호등이 깜빡깜빡 점멸하며 빨리 건너라고 재촉한다. 봄비에 젖은 거리에는 우산을 든 이들이 헐레벌떡 뛰어간다. 나 또한.
신호등 앞에 나란히 줄을 선 자동차 안의 사람들은 신호등을 건너는 사람들을 동물원 구경이라도 하듯 바라보겠지? 누가 볼 거라 생각하니 구부정하던 허리를 이내 빳빳하게 세워본다. 지각이 두려울망정 가오는 있어야지.
헛, 빨강 불이다.
에라 모르겠다. 냅다 뛴다. 가오는 없더라도 먼저 살고 볼 일이지.
신호등을 건너 안양천 길에 접어들면 끝도 보이지 않는 기다란 활주로가 펼쳐진다. 겨울 동안 앙상한 나뭇가지만 있더니 어느새 푸르게 뒤덮였다. 활주로에는 거센 바람에 쉬이 떨어진 벚꽃 잎이 가득이다.
아, 이게 그 꽃길만 걷게 하겠다는 그 꽃길인가?
봄비에 벚꽃잎이 초속 5mm의 속도로 떨어져 내리고 길 양쪽으로 우거진 벚꽃나무는 일부만 하얗고 하루가 다르게 초록으로 뒤덮이는 중이다. 더 일찍 피었던 개나리도 아직 노랑이를 붙들고 놔주지 않는 마당에 벚꽃은 무슨 바쁜 일이 있는 건지 벌써 그 하얀 꽃잎을 훌훌 털고 가시려 한다.
그리고 그 가신 자리를 울긋불긋한 철쭉이 대신하려고 잔뜩 피어오른다.
자연은 매직이다.
작년에도 그랬고 재작년에도 그랬고 이 자연의 위대함은 인류가 태어나기도 훨씬 오래전부터 반복되어 왔고 인류가 사라질 이후로도 계속 반복될 것이라 본다. 다만 인류의 욕심으로 인류의 역사가 지구의 종말을 가져온다면 이 자연의 위대함조차 어쩔 수 없을게다. 지구라는 공간에서의 최악의 빌런은 '인간'일 게다.
아침을 적시던 봄비는 금세 멈추더니 햇볕이 드러나는 듯싶었다. 점심시간이 되니 날도 좋은데 멀리 나가자 해서 우산도 없이 나갔건만 밥을 다 먹고 나오니 후드득후드득 빗방울이 굵어지기 시작한다.
다시는 안 올 듯싶더니 이게 웬 비란 말인가. 사람이 그리도 미웠는가. 마치 을지문덕 장군의 살수대첩에서 수공으로 공격을 하듯 안심하고 점심 먹으러 보내더니 난데없이 비를 퍼부으면 뭔 수로 당해내냐. 역사로만 배웠던 수나라 병사들의 마음이 이러했을는지도 모르겠다.
미우면 말로 해라. 물세례는 너무하는 거 아니냐?
봄이 어느덧 4월 중순을 조용히 지나간다.
창가를 때리던 봄비는 이내 소리를 멈추고 자동차 바퀴에 젖은 빗물 질척이는 소리만이 이 조용한 오후를 형태 없이 가로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