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한 4월 봄밤

오밤중에 길을 나설 땐 현금 두둑한 지갑을 가지고 나가라.

by 생각하는냥

봄은 이미 4월을 보내고 있는데

봄밤은 아직도 겨울밤을 잊지 못하여 그 손을 놓아주지 않는다.

봄밤에 봄옷을 입고 나갔는데 얼어 죽을 것 같으니

봄이 봄인 것인지 누구에게 따져 물어야 할까.


아침에 먹을 식빵을 사러 야밤에 밖을 나섰다.

묵직한 현금지갑과 가벼운 카드지갑 둘 중에 뭘 가지고 나갈까.

그냥 가볍게 식빵 하나 살 건데.

카드지갑을 주머니에 넣는다.


그렇게 나섰는데

냉랭한 겨울바람 같은 봄바람만 잔뜩 맞고

식빵은 구경도 못 했다.

하필 품절이라니.


찬바람 맞아가며 다른 빵집을 찾아갔다.

하필 거기도 품절이란다. 무슨 약속이라도 한 듯 내게 파업인가?

내 것 하나 남겨놔 주면 어디가 덧나냐고 주인에게 따져 묻는다면 미친놈 같겠지.


결국 빵집 식빵이 아닌 마트 식빵을 샀다.

분명 이 식빵은 그 식빵 맛이 나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어쩌랴. 얼핏 흉내는 내겠지.

식빵이 입에 절로 붙는 밤이로다.

이런 식빵. (찰지게 읽어야 한다. 다시 한번. 이런 식빵.)


사는 김에 주스도 사고 치즈도 사고 뭣도 사고.

정말 식빵만 사려고 나선 밤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비닐 가득이다.

그나마 위안이라면 과자는 사지 않았다.


이것은 유혹을 이겨낸 것일까, 아니면 유혹을 이겨내지 못한 것일까.

그래도 과자는 사지 않았는데 말이다.


마트를 나서니 호떡 트럭이 보인다.

이 밤중에 마트 앞에 호떡 트럭이라니.

아마도 중국 호떡이라 해서 공기가 들어간 빵빵한 마른 호떡일 게 분명하다.

그래도 호떡은 지글지글 거리는 소리를 내며 구워진 한국식 호떡이 최고인데 말이다.


그냥 지나치려는데 트럭 앞사람들 틈새 사이로 보이는 호떡은,

어머나 너 거기 왜 있니. 한국식 호떡이었다.


주머니를 뒤졌다.

아 맞다. 난 하필 카드지갑을 들고 길을 나섰다. 그러니 현금이 없다.

고로 호떡을 사 먹을 수 없는 난 카드 거지다.


트럭이 카드를 받아주시려나?

트럭 앞에서 머뭇거렸다.


길을 지나던 누군가가 트럭 앞에서 머뭇거리는 날 불쌍히 여긴다면

혹시나 호떡을 사줄 어떤 마음 따뜻한 동화 속 주인공 같은 사람이 한 명 정도는 지나가지 않을까 싶은 말도 안 되는 허접한 꿈을 가져본다. 아주 잠시 동안.


오밤중에 길을 나설 땐 말이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가급적 현금 두둑한 지갑을 가지고 나가길 적극 권장하는 바이다.


귀가한 지 많은 시간이 지났는데도 호떡의 향기가, 호떡의 쫀득함이, 그리고 호떡의 단 맛이 고문을 한다.

이 밤,

다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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