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루는 방법에 대한 사악하고 영악한 생각
나는 해야 할 일을 종종 미루곤 한다.
그럴 때마다 핑계를 댄다. '여유가 생기면 해야지', '시간 나면 해야지', '이따가 해야지', '10분 후에 해야지', '1시간 후에 해야지', '내일 해야지'.
여유나 시간, 그리고 이따가 등의 애매한 시간으로 핑계를 댈 때에는 지금 당장 안 하겠다는 것이고 최대한 애매한 시간으로 포장하여 최대한 시간을 벌거나 혹은 앞으로도 아예 하지 않을 것이라 의미를 숨기고 있다.
그러나 10분, 1시간, 내일 등의 구체적인 시간으로 핑계를 댈 때에는 빼박이다. 약속한 시간이 있으니 그 이후에는 더 이상의 변명을 할 수도 없으니 조만간에 꼭 하겠다는 걸 의미한다.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상대방에게 답을 할 땐 가급적 애매한 시간으로 답을 하고 상대방에게 답을 구해야 할 땐 가급적 구체적인 시간으로 답하도록 요구하곤 한다. 나는 잘 알고 있다. 이것이 얼마나 사악하고 영악한 짓인 것을.
하지만 미루는 습관은 대체로 나쁘다.
잠을 미루면 불면의 밤을 지새야 하고 끼니를 미루면 배고파 죽을 것 같고 설거지를 미루면 악취가 쌓인다. 결론적으로 해야 할 일을 미루게 되면 부정적인 기압골의 영향으로 인해 우울의 폭풍우에 휩쓸리게 된다는 것이다.
고로 해야 할 일을 미루는 것 자체를 권장하지는 않는다. 잠은 올 때 자는 게 좋고 끼니는 제 때 먹어야 하며 설거지는 먹고 바로 치우는 게 좋다.
그러니까 미루는 일은 뭐 하나 나을 게 없으니 미루는 방법에 대한 사악하고 영악한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이 얼마나 '거지 같은' 생각인가.
잠깐만. '거지'라니.
듣는 '거지' 기분 나쁠 일이다. 거지도 인격이 있는데 말이다. 누가 제일 먼저 이런 단어를 사용해서 기분 나쁠 때 사용했을까. 듣는 거지 억울하게 말이다.
그러고 보니 기분 나쁠 때 화날 때 'ㄱㅅㄲ'라는 욕도 한다. 듣는 개들은 얼마나 기분 나쁠까. 개는 무슨 잘못을 했다고. 사람보다 나은 견공들이 얼마나 많은가. 죽은 주인을 한없이 기다린다거나 화재의 위험 속에서 주인을 살린다거나 강가에 빠진 새끼를 구하려고 거센 물결도 가로지르는 용기는 사람보다 훨씬 낫다. 누가 'ㄱㅅㄲ'라는 욕을 처음으로 만들었을까. 그는 분명 개에 대한 한이 있었을 것 같다.
그래도 말이다.
표준어는 아니지만 '개간지 난다', '개 웃겨'라는 말을 쓰곤 한다. '개'가 붙음으로 인해 긍정적 언어를 좀 더 강화시켜주지 않나.
정지!
옆으로 너무 샜다.
그러니까 결론은 말이다.
개간지 나게 뽀대 나게 개 웃으면서 살려면 애초에 미루는 방법에 대한 사악하고 영악한 생각일랑 하지를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