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 익은 고구마같이 다가온 설익은 가을의 이야기
벌써 바람이 차다.
산책을 나갔다.
차가워진 바람은 마치 비 온 뒤 불어난 계곡물처럼 거칠게 불어왔다. 다시 집에 가서 옷을 껴입고 나올까 싶다가 귀찮아서 그냥 걸었다. 추우면 다시 집에 들어가면 되지 싶어서. 게다가 아직 가을 단풍이 코앞인데 지가 추우면 얼마나 춥겠어. 하지만 바람은 매우 차가웠다.
한참을 걸으니 몸이 달아올라 처음과는 달리 추위를 타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문자를 보내려고 폰을 만지작 거리는데 손이 시렸던지 자판 치는 손가락이 잘 움직이지 않았다. 계속 추위에 노출되어 있던 손은 찬 바람을 고스란히 견뎌내고 있었던 모양이다. 은근히 추운 이 날씨 어찌하랴.
추석 연휴의 마지막 날은 그렇게 찬 바람이 쌩쌩 불며 덜 익은 고구마같이 설익은 가을을 그려내고 있었다. 빛과 어둠이 바뀌는 시간의 가을 풍경은 더없이 추웠고 더없이 아름다웠다.
다음날 드디어 기나긴 연휴가 끝나고 출근이다. 연휴 동안에 너무도 쉬어서 출근하는 날이 올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옷을 차려 입고 현관을 나서는 순간까지도 산책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무실 앞에 도착하고 나서야 숨겨왔던 월요병이 발작을 일으켰다. 발작 발작.
첫 발을 내딛자마자 무거운 사무실 공기가 어깨를 누르고 오랜만에 보는 동료들의 얼굴은 그리 반갑지가 않다. 좀 더 오랜만에 봐도 괜찮은데 말이다. 그들의 생각도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하루만이라도 더 늦게 보고 싶었을 것이다.
겨우 오전 시간을 보내고 난 후 즐거웠어야 했을 점심은 이상하게 소화불량이다. 왜 얹힌 것인지 모르겠다. 급하게 먹은 것도 같고 어떤 음식이 자극적인 MSG를 가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고, 어쨌든 그 행복했던 점심시간조차도 기나긴 연휴 이후의 월요일은 적응이 안 된다.
소화라도 시킬 겸 동네 한 바퀴를 돌고 사무실에 들어오니 이제는 원인모를 졸음이 눈꺼풀을 아래로 아래로 잡아당긴다. 잠 달아나라고 긴급처방을 내렸음에도 눈치 없는 졸음은 떠날 줄을 모르고 아예 자리 잡고 누웠다. 아이고 잠 와 죽겠네.
찬 바람에도 불구하고 창문을 꼭꼭 닫은 사무실은 햇볕에 의해 추석 연휴 이전처럼 살살 데워져만 갔다. 그제야 에어컨을 틀고 예전의 사무실 분위기를 찾고는 업무 분위기를 완벽 적응해 나간다.
7, 8월의 길고도 길었던 장마는 언제 그럈냐는 듯 꽁무니를 감췄고 더위도 맥을 추지 못한 채 멀리 가버렸다. 이미 가을이었는데 이제야 가을을 느끼려고 하였더니 벌써 찬 바람이 감기 걱정부터 하게 하는 아주 못된 가을이다.
10월도 벌써 5일이 지났다. 아무것도 안 하다가 10월도 몽땅 보내지 않을까 싶다. 10월은 뭐라도 하나 하고 보내자. 눈 한번 감았다 뜨니 10월의 마지막 밤을 노래하는 그런 10월은 보내지 말자. 정 할 게 없다면 노래 제목처럼 보고 싶은 이에게 가을엔 편지라도 해보자.
그런데 벌써 아무것도 하지 않고 미루고 싶은 귀차니즘의 욕망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건 어쩌지?
아이고 삭신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