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의 가슴은 쫄보로 채워진다.
집, 회사가 다인 하루 일상에서 현관을 나서는 횟수는 몇 번 되지 않는다. 직장을 다니는 성인 남자로서 출퇴근 시간이 비슷한 동주민이 있다 하더라도 하루에 한 번 이상 만나게 되는 일은 그리 흔한 일은 아니다.
그런데 몇 달은 된 듯하다.
위층 할아버지와 자주 마주치게 된 일 말이다. 이 분은 원래 일 년에 대여섯 번도 마주치기 어려운 분이었다. 그런데 몇 달 전부터인가 하루에 한 번 이상은 마주치고 있다. 그동안의 오랜 아파트 생활 패턴으로서는 쉽게 일어나지 않을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게 되는 일이 자주 일어났다. 마치 현관문을 열고 나오는 타이밍을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들 정도로 엘리베이터에서 종종 마주쳤다. 바깥 외출이 몇 번 되지도 않는 내가 이렇게 이 할아버지와 자주 마주치는 건 왜일까? 심지어 위층에 사시는 할아버지는 얼마 전부터 일부러 한 층 내려와 타기까지 한다. 굳이 왜?
또 한 번은 이랬다.
우리 아파트는 복도식이다. 저녁 11시경이 되어 잠시 밖에 볼 일이 생겨 현관을 나서는데 멀리서 엘리베이터 앞으로 이동하는 검은 그림자가 보였다. 최근 자주 많이 눈에 띈지라 한밤중인 데다 멀리서 본 시커먼 형상이었음에도 그 할아버지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굳이 이 시간에 아래층까지 내려와 엘리베이터를 타는 이유가 뭘까? 살짝 섬뜩하기까지 하니 가던 걸음이 절로 멈추어졌다. 설마 진짜 감시라도 당하는 건 아닐까?
이미 내려가셨겠지 싶은 타이밍에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다. 할아버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주차장으로 걸어가다 다시 그 할아버지와 또 마주쳤다. 쓰레기장에서였다.
그런데 이상한 건 우리 동 쓰레기장을 놔두고 앞 동 쓰레기장에서 분리수거를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내가 옆을 걸어갈 즈음 어떤 철제형 쓰레기를 바닥에 힘껏 내팽개쳤다. 덕분에 찌렁찌렁한 소음이 밤공기의 잔잔함을 깨고 멀리멀리 펴져나갔다. 마치 '이 나쁜 놈아, 왜 같이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은 것이냐'며 분노를 표출하는 것 같았다.
스릴러 장르의 영화나 드라마는 이런 식으로 탄생하는 것이다.
어떻게 이렇게 자주 마주치게 되는 것인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가서 굳이 물어볼 정도의 관심사도 아니고 말이다. 하고자 하는 말은 그냥 일어나지 않을 일이 자주 일어난다는 것뿐이다.
추측하건대 아마도 이 할아버지의 바깥 활동량이 많아진 탓인 것 같다. 혼자 살다 보니 심심했을 것이다. 그리고 바깥 활동량을 늘려서 건강도 챙기고 싶으셨을 거라고 본다. 그러니 활동이 적은 내가 현관을 나설 때마다 활동이 많은 할아버지와 자주 마주치게 되는 거겠지.
아파트 문화라는 게 옆집 사람하고 인사하고 지내기도 쉽지 않은 폐쇄적인 공간이다. 인사라도 할라치면 무언가 공통적인 공감대가 있는 사람들끼리여야 가능하다. 자녀가 같은 학교를 다닌다거나 혹은 같은 직장이라거나 혹은 어떤 같은 동호회라거나. 그렇지 않으면 단지 이웃이라는 이름으로 가까이하기엔 불편한 거리와 높은 벽이 존재한다.
사회에서 괜히 친해졌다가 불편한 도움이나 청탁을 받고 피를 보게 되었던 나쁜 경험들 때문에 사람들과 적당한 거리를 두려는 습성이 몸에 밴 것도 한몫하는 것 같다. 그런 일들이 자주 일어나면서 습관이 되어 버려 자주 부딪히게 된 할아버지의 존재도 불편해진 것이라 생각한다.
도시의 삶에 찌들어버린 핑계를 대어도 보지만 낯선 이방인을 삶의 테두리 안으로 가까이 들이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더군다나 현대인의 가슴은 쫄보로 가득 채워져 있지 않은가.
할아버지의 존재를 불편하게 생각하는 일은 덜 하겠다만 대신 굳이 오밤중에 한 층 아래 내려와 엘리베이터를 타지는 않으셨으면 좋겠다. 역시나 내 가슴도 쫄보인지라 그런 걸 볼 때마다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13일의 금요일의 살인마를 보기라도 한 것처럼 섬뜩해지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