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치

방치된 것들에 대한 이야기

by 생각하는냥

익어가고 있었다.


마땅히 군것질 거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습관적으로 열어보는 집 냉장고처럼 회사 냉장고도 열어보곤 한다. 그리고 집 냉장고와 그리 다르지 않음에 깜짝 놀란다. 집 냉장고 안에도 방치된 음식물들이 쌓여 있듯이 가짓수가 적긴 하지만 역시나 방치된 음식물이 발견된다.


누가 주인인지도 모를 방치된 음식들이다. 먹다만 음료수도 있고, 심지어는 아직 따지 않은 음료수도 있다. 구운 계란 몇 개가 몇 주째 방치되어 있어 왔는데 얼마 전부터는 주인 없는 햄버거가 냉장고에서 익어가고 있었다.


먹다만 음식물은 주인이 먹다가 입맛이 변해서 방치한 거니까 이해가 간다마는 아직 뜯어보지도 않은 것들은 어떤 사연으로 그렇게 방치된 것인지 정말 궁금하다. 멀쩡한 음료수에 멀쩡한 햄버거라니. 대체 그것을 가져다 놓은 사람은 누구며 왜 아무런 문제없는 음식을 먹지 않는 것일까.


인원 몇 안 되는 이 작은 회사에 공지까지 띄워 뜯지도 않은 음식물을 가져가라 하였으나 끝내 주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혹시 이미 퇴사한 직원이 앙심이라도 품고 뭐라도 섞어서 넣은 것은 아닐까. 그건 스릴러 영화에서나 흔하게 보는 것이지 현실에서는 설마. 아니면 이미 퇴사한 직원이 감사의 마음으로 누구라도 먹으라고 말없이 넣은 것인가? 그럴 거면 나를 주지.


제 아무리 고민해봤자 아무 쓸모없다. 결국 주인 없는 음식물은 그대로 쓰레기통으로 향하고 말았다.


상태가 온전하든 온전하지 않든 방치되면 폐기물 처리되는 건 사람의 마음도 똑같다. 제 아무리 사랑을 했더라도 좋아했더라도 혹은 그에 준했던 마음이더라도 오랫동안 방치해버리면 그 마음 버려지고 사라지는 건 시간문제에 지나지 않는다.


그럴 거였으면 애초에 씨앗을 심지 말았어야 했다. 뿌리가 심장으로 파고들게 하고 방치하는 것은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다. 몰라서 했어도 그렇고 알아서 그랬으면 더 나쁘다.


이 가을이 다 가기 전에 방치해둔 것은 없는지 주위를 둘러보자.

두리번두리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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