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의 색

빨강, 노랑, 그리고 녹색 혹은 지나치게 녹색

by 생각하는냥

한 것도 없는데 언제나 금세 지나가 버리는 것들이 있다.
시간의 블랙홀이다.

주말이 되면 한 것도 없는데 방바닥을 뒹굴다 금세 지나가 버린다. 이른 아침에 깼지만 눈만 껌뻑이다 금세 출근할 시간이 되어 버린다. 출근 준비를 일찍 했는데 현관을 나서는 시간은 지각에 빠듯한 시간이다.

그렇게 시작된 월요일의 어깨는 무겁기만 하다.
우지직.

신호등을 건너 인도로 오르려는데 청소를 하겠다고 나선 세명의 할아버지들이 느긋한 발걸음으로 길을 막는다. 인도 옆은 차단막이 되어 있어 할아버지들을 뚫고 지나가야만 했다. 아쉬운 사람이 길을 만들어야지 어쩌랴. 인도 옆으로 난 도로 위를 걸었다.

그런데 그때 하필이면 바로 눈 앞에 정차되어 있던 차 문이 열리더니 거품 묻은 커피를 길가에 쏟아내는 게 아닌가. 거품이 있는 걸로 보아 라테 같았다. 시럽이 들어가 있겠지? 밟게 되면 아마도 신발은 찐득찐득 해질 게 뻔했지만 선택권이 없었다. 이런 날이 하필 월요일이다.

다음 사거리의 신호등은 도착하자마자 녹색 끝 빨강 시작이다. 안 되는 날은 그렇게 빨강으로 색칠이 되고 만다.

그래서 빨강이 될 뻔한 월요일이라서 아침부터 새하얀 요플레와 노란 반숙란으로 배를 채워주니 뜨듯한 노랑이 되었다. 그리고 '양식 돈가스'로 점심을 채우니 금세 녹색이다. 역시나 하루를 도색하는 데에는 먹고 자는 원초적인 게 최고다.

추위가 빨리 왔길래 10월 말이면 어쩌면 첫눈이 올지도 모른다라고 했는데 날씨는 의외로 침착하게 적당한 바람과 햇볕으로 여전히 가을을 뽐낸다. 이런 날씨에 배불러진 몽상가에게는 제일 좋은 후식은 산책되시겠다.

지금 난 지나치게 녹색이다.
므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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