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배는 따뜻하고 봐야 한다.
길목에 동네 양아치들이 떼거지로 몰려들었다.
양아치는 부딪치지 않는 게 상책이라 가급적 먼지 하나 닿지 않으려고 조심조심 걸어야만 했다. 워낙 숫자가 많다 보니 주눅이 들어 슬금슬금 걸어 그들을 피해 지나갈 수 있었다. 왜 아침부터 양아치들이 길을 막고 설치는 것인가. 누가 길가에 먹이라도 뿌려 놓은 거 아닐까? 아니면 가을날이 너무 좋아서 길 옆 잔디에 먹잇감이 쌓였는지도 모른다.
이 양아치 떼의 정체는 비둘기다.
백 마리에 가까운 녀석들이 모이니 소름 돋았다. 얘네들은 누가 따로 먹이를 주지 않아도 이렇게 번식하는 걸 보면 평화의 상징이라기보다는 번식의 상징이 되어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아침 출근길부터 비둘기의 습격으로 심기가 불편한데 화장실에 갔다가 바지 지퍼를 올리는데 뻑뻑하였다. 그래서 내렸다가 힘을 줘 다시 올리는데 툭하고 손잡이가 떨어져 나갔다. 헉!. 고개를 숙여 바라보니 단순히 손잡이만 분리된 것이 아니라 지퍼가 홍해 갈라지듯 활짝 갈라져 있는 게 아닌가. 대참사가 일어나고 만 것이다. 하필이면 속옷도 환한 색인데 말이다.
어떻게 손을 써 볼 수가 없어 일단 상의를 꺼내 활짝 열린 남대문을 감춰 보았다. 대충 하루 종일 버틸 만은 했다. 그러나 자칫 누군가 보게 되기라도 하면? 책상 빼야지 뭐.
바꿔 입을 바지가 필요해졌다.
곧 점심시간이 되었고 가까운 옷 가게로 갈 것인지 아니면 조금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집으로 갈 것인지 선택해야만 했다. 그리고 결정하였다. 느닷없이 신상보다는 익숙한 것에 기대는 것으로 말이다. 나이가 들면 뇌가 보수적으로 변한다고 하던데 익숙한 것을 선택한 걸 보면 내 나이도?
집으로 가는 길에 또다시 양아치 떼거리와 마주하였다.
아니, 얘네들은 무슨 밥을 하루 종일 먹냐. 이 돼둘기들 같으니. 동물에는 '돼지'라는 단어를 조합하여 돼냥이, 돼둘기 이런 말을 만들어내서 부르기도 하는데 하루 종일 먹어대기만 하는 사람에게는 '돼지 + 인간 = 돼간이'라고는 안 부른다. 인간에게는 그냥 대놓고 '돼지'라고 부른다. 인간이 인간에게 너무 폭력적인 건 아닐까? 그냥 '돼지'라 부르다니.
가만.
그래서 어제 점심 메뉴는 라면을 넣어 끓인 '꿀꿀이죽'이었나? 레시피는 그냥 생각나는 걸 막 넣고 끓이기만 하면 된다. 집에 간 김에 점심도 먹었다. 간은 마법의 라면 스프가 알아서 한지라 맛이 없을 리 없었다.
배가 따뜻해지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마련이다.
오가는 길에 마주친 가을에 흠뻑 물든 은행나무는 눈을 즐겁게 한다. 덤으로 산책까지 했으니 대형참사를 당한 사람 치고는 너무도 소소한 행복을 마주한 듯. 행복, 멀리 찾을 필요가 있나. 고장 난 지퍼에 튀어나왔던 입은 어느새 쑥 들어가 이제는 입꼬리를 씩 올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