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바람

지구가 빠개져도 시간은 흐른다.

by 생각하는냥

10시 즈음이었나.

잠깐 밤공기를 쐬러 나갔는데 빗방울이 뚝뚝 떨어져서 몇 걸음 걷다 다시 되돌아왔다. '엊그제 비가 왔는데 또 와? 설마 7,8월의 장마가 다시 오는 건 아니겠지.'


잠시 찬 바람을 쐬었다고 잠이 쏟아졌다. 평상시 같으면 딴짓을 하다가 어쩌다 새벽을 맞이했을 터인데 이불 안으로 들어갔다. 해야 할 일이 있다 보니 알람도 30분 후로 맞추고 말이다. 그리고 눈을 떠보니 새벽 6시! 응?


대개는 새벽시간에 자서 알람 시간에도 겨우 일어났었는데 무려 1시간 넘게 일찍 일어난 것이다. 물론 너무 일찍 잤고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람 시간이 아니니 더 자고 싶은 욕망이 피어났다. 물론 자지는 않았지만 하는 일 없이 한 시간 동안 포근한 이불 안에서 열심히 꿈틀거렸다.


출근 준비 후 현관문을 여는데 깜짝 놀랐다.

'쌀쌀하다.' 살갗이 알리는 체감 온도는 올 들어 가장 추운 날이라는 걸 알려왔다. 어제저녁보다 훨씬 더 찬 바람이 가을 외투를 뚫고 들어왔다. 다시 집으로 들어가 패딩을 찾아 꺼내 입기에는 시간이 부족한 이미 '지각'인 시간이었던지라 외투의 단추를 잠그는 걸로 대신하였다.


그러고 보니 11월이라 이제 추워질 때도 됐고 앞으로 더 추워질 날만 남았다. 그렇게 추운 날이더라도 그래도 어제만큼이나 우울하고 어수선한 날이 되지는 않겠지.


정기검진일이 되어 간 병원에서는 수납을 하려는데 옆에 온 할머니가 본인 순서도 아닌데 봐달라고 하는 통에 잠시 혼이 나가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 순간 코앞에서 진료카드를 그만 분실하고 말았다. 새로 발급은 받았지만 분실한 카드를 누군가 주워갔을 거라는 찝찝함 때문에 온종일 신경이 쓰였다.

사무실로 복귀하고 얼마 후 개그맨 박지선의 사망 소식이 들려왔다. 응? 팬도 아니고 나와 무관한 사람이기는 하지만 그 누구보다도 밝은 기운을 전해주던 그였다. 그런 그의 자살 소식은 우울함을 불러온다. 힘들면 힘들다고 말이라도 해 주지.


그런 어제였다.


하지만 시간이 어떤 존재던가. 조물주조차 그 앞에서 무릎을 꿇지 아니하던가. 시간은 그런 어제의 어두운 감정으로부터 조금씩 조금씩 멀어져 가게 해 준다. 따뜻한 차 한 잔 마시고 몹시도 시원할 것 같이 기지개를 손끝까지 쫘악 펼치고 허리를 꼿꼿하게 세운 다음 깊은숨을 들이마셔 내뱉어 보았다.


그래.

지구가 빠개져도 시간은 흐른다.


점심 후 정오의 따뜻한 햇볕도 차디찬 바람을 이기지 못하는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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