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누구, 여긴 어디'에 대하여
사계절로 들어가는 관문이 24절기로 구분되어 있기는 하지만 정확하게 언제부터 봄이고 여름이고 가을이고 겨울이란 없다. 다만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에 의하면 체감상 추위가 끝나면서 따뜻해지면 봄이고 체감상 더워지면 여름이고 체감상 더위가 끝나면서 선선해지면 가을이고 체감상 추워지면 겨울이다.
2020년 11월의 5일째 되는 날은 무늬는 아직도 가을인데 체감은 이제 겨울인 날이다. 가을 같은 겨울이고 겨울 같은 가을이다. 아직 나무에는 가을에 물든 낙엽들이 제법 매달려 한 폭의 풍경화 한 부분을 제법 채우고 있다. 하지만 차디찬 바람에 패딩을 꺼내 입고 시린 손을 주머니에 넣고 걸으며 '더럽게 춥네'를 내뱉는 것은 이제 겨울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기도 하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오늘의 계절이 이러하다.
살다 보면 손짓 하나로도 물건을 들어 올릴 것 같고 사계절을 제멋대로 제어할 수 있으며 갑자기 부자가 될 것만 같은 착각이 드는 날이 있다. 혹은 그 반대로 전 우주에서 먼지보다 못한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는 걸 깨닫게 되는 날도 있다. 전자는 망상인데 후자는 현실이다. 나 하나 퇴사한다고 회사가 망한다거나 달라지지 않는 것처럼 나 하나 없어진다고 달라지는 세상은 아니다.
세상은 귀찮은 일 투성이다.
실은 아무것도 하기 싫은 요즘이다. 하던 운동도 멈춰 있고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싫어서 글 쓰는 것도 잘 안되고 돈 버는 일도 귀찮은 요즘이다. 게다가 추워지니 안전한 이불 안에서 나오는 것 자체가 귀찮은 요즘이다.
그런 요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맛있는 식사 한 끼에 포만감을 느끼고 따뜻한 차 한 잔에 마음의 여유를 찾으며 지인의 위로 한 마디에 기운을 차리는 하루의 행복에 만족하며 평범한 하루가 좋다. 먹으면 배가 아파지는 매운 음식이 오래간만에 당겨 먹게 된 회사 근처 중국집의 육짬뽕에 소소한 행복을 느끼고 그럼에도 배가 아프지 않음에 다시 또 행복을 더한다. '가위바위보'로 후식 살 사람을 정하자는 제의에 선뜻 내가 사겠노라며 그들의 손에 커피 하나씩 쥐어주자 '잘 먹겠다'라고 건네는 감사인사에 또 또 행복 한 스푼을 추가한다.
남들이 아메리카노를 마실 때 난 '라임 패션 티'를 마시고 남들이 춥다고 그냥 지나치는 은행나무를 센티하게 사진에 담아둔다거나 남들이 모두 예라고 하는 것에 지극히 주관적으로 생각하건대 아니오라는 51%의 가능성이 보인다면 자신 있게 '아니오'라고 말할 줄 아는 독특함으로 존재감을 확인한다.
'난 누구, 여긴 어디'라는 철학적 물음에 현실로 답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