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코 앞도 예측을 못하는데 하물며 먼 미래의 예측이 가능이나 하겠는가
점심때 먹은 카페인이 지금까지 작용할 거라고 생각지 못했다.
별다방의 '라임 패션 티'는 아메리카노의 양만큼 카페인이 들어있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도 점심때 마신 거니까 저녁까지 갈까 싶어 안심하며 느긋하게 그렇게 마셨다. 더군다나 목요일까지 마무리해야 하는 업무가 있다 보니 카페인의 도움이 필요하기도 했고. 그런데 설마 이렇게 늦은 시간까지 카페인이 작용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래서 남들 다 자야 하는 시간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지금은 너무도 선명한 현실이다.
일이 늦어져서 방금 전인 새벽 2시까지 야근을 하다 퇴근을 했다. 집까지 걸어갈까 싶다가 택시를 잡으러 돌아섰다. 그러나 다시 멈춰 섰다. 다시 고민에 들어갔다. 피곤한데 카페인 덕분에 눈망울은 너무 또랑또랑했고 밤바람은 낮보다도 덜 추웠다. 추위가 그새 사그라들었다. 이 정도면 집까지 걸어가도 되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새벽 2시였다.
고민 삭제!
새벽 2시에 굳이 집까지 걸어갈 시간에 택시를 타고 일찍 가서 1분 1초라도 더 자는 게 나을 거란 생각에서 고민은 삭제하고 택시를 타러 큰 길가로 갔다. 기다리는데 건널목에서 술에 취한 두 명의 처자가 건너오더니 내 앞쪽에 서는 게 아닌가. 술에 취하긴 했어도 정신은 말짱해 보이는 두 처자는 택시를 기다리고 있는 내 모습이 보이지 않았나 보다. 그래도 어쩌랴. 늦은 저녁이니 먼저 태워 보내는 게 좋겠단 생각에 아무 말 없이 양보했다.
택시가 이내 왔고 한 명의 처자가 타고 떠났다. 남은 처자가 등을 돌리고 서 있는데 또 다른 택시가 다시 들어왔다. 처자는 택시를 잡을 것 같지 않았다.
"택시 왔는데 안 타요?" 물으니 뭐랄까. 술에 취한 낯선 남자라 생각했나? 무시하는 듯한 눈빛이었다. 새치기까지 한 거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야근하고 가는 이에게 이 무슨 실례인가. 고개만 절레절레 흔들길래 냅다 잡아탔다.
이 늦은 밤에 낯선 남자에게 웃으면서 고맙습니다라고 하다가 괜히 꼬이는 것보다 오히려 그렇게 냉정한 눈빛이 더 나으려나? 그러다 괜히 오해받아서 시비받는 게 더 위험할지도 모르는데. 그게 위험할 줄 알았더라면 처자 둘이서 이 시간까지 술을 마시지는 않았겠지.
하여튼 집으로 향했다. 나를 꿈나라로 인도해줄 포근한 이불 안이 기다려지는 집으로 말이다.
집에 도착해 옷을 갈아 입고 푹 잠을 하려는데 '어라?' 프라이팬에 햄이 2조각이 있는 게 아닌가. 이걸 어쩌지. 저녁을 든든하게 먹었고 배가 고프지도 않았는데 왜 그랬을까. 왜 그 앞을 그냥 지나치지 못했을까.
밥통을 열었고 숟가락을 들었고 김치를 꺼냈고 햄 두 조각을 하얀 쌀밥 위에 올려놓았다. 이미 야식행의 열차를 되돌리기엔 늦어버렸다. 꿀꺽 냠냠. 어느새 햄 두 조각과 쌀밥은 깡그리 사라져 있었고 김치통의 김치를 아삭아삭 씹어 먹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아, 망했다. 야근에 야식에 게다가 벌써 새벽 4시가 넘어버렸다. 난 왜 택시를 탔을까. 차라리 걸어서 왔더라면 피곤해서라도 잠에 취해 있을지도 모른다. 택시로 번 시간에 야식을 먹고 소화시킨다고 새벽 4시까지 이러고 있을 줄이야.
바로 코 앞도 예측을 못하는데 하물며 먼 미래의 예측이 가능이나 하겠는가.
투덜투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