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게 다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by 생각하는냥

안양천을 따라가다 보면 징검다리가 나온다.


징검다리가 한 걸음에 하나씩 건널 수 있으면 좋겠지만 사람마다 보폭이 조금씩 다르고 돌 크기도 조금씩 다른 탓에 박자 감각이 있어야 건너기가 쉽다. 돌 하나에 한 걸음씩 걸을 것이냐 아니면 두 걸음씩 걸을 것이냐를 선택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약간의 리듬감이 필요하다. 건너다 삑사리가 나기라도 하면 발을 헛디뎌 풍덩 물에 빠질 수도 있다. 실제로 박자 감각이 더딘 아는 지인은 징검다리 건너다 빠질 거 같다며 징검다리가 무섭다고 한다. 그런데 어디까지나 이건 지극히 주관적인 나의 주장일 뿐이다.


저 멀리 징검다리를 건너고 있는 남자는 키가 커서 그런지 '딴딴 따라' 3/4 박자로 건넌다. 한 걸음에 하나씩 돌다리 두 개를 건너고 다음번 돌다리에서는 두 걸음을 내딛는다. 참고로 나는 '딴 따라' 2/4박자다. 하나의 돌다리는 한 걸음에 내딛고 다음번 돌다리는 두 걸음을 내딛는다.


어느덧 징검다리에 도착하여 2/4박자 리듬감에 푹 빠져야 할 타이밍이 되었다. 그때 한 걸음 앞서 한 사내가 진입하였다. 그의 키는 대략 보더라도 나보다 반 뼘 정도는 더 커 보였다. 키가 크니 당연히 앞서 지나간 사람처럼 3/4박자의 리듬으로 건널 줄 알았다. 그런데 이게 웬 걸? 돌다리 하나당 두 걸음씩 건너는 게 아닌가. 그가 롱코트를 입었기 때문에 다리 길이를 알 수는 없었지만 설마 옷 안에 숨긴 것이 숏다리는 아닐 텐데 말이다. 답답하니 밀쳐서 그를 물에 빠트리고 가면 분명 죽자살자 쫓아올 것이다. 투력이 낮은 나로서는 굳이 징검다리 건너자고 목숨 걸 일은 아니지만 답답해서 밀치고 싶은 충동이 머리 끝까지 올라왔다.


겨우 다 건너고 나니 그의 보폭이 빨라지는 게 아닌가. 어라, 숏다리가 아니었구나. 그런데 왜 그렇게 짧은 보폭으로 징검다리를 건넜을까. 그가 리듬감이 부족해서라거나 혹은 물에 빠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앞서서 일거라는 그랬을 거라는 추측을 할 수는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 각자의 사정이 있었겠지. 그것까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러니 겉으로 보이는 게 다는 아니다.


약 2주 전에 산 겨울 바지는 신사임당 한 장으로 주문을 한 바지였다. 옷감이 두꺼워서 따뜻할 거라는 문구를 믿고 지른 옷이었는데 지난 월요일에 꺼내 입어보고 깜짝 놀랐다. 이 두터운 옷이 왜 엉덩이를 시리게 하는 것일까. 옷감은 분명 두꺼운데 보기와 너무 다르게 보온 효과가 시원찮았다.


약 1주 전에는 기모 청바지 1+1+1 = 신사임당 한 장이라는 광고에 지름신의 유혹에 뿌리치지 못하고 지르고 말았다. 이 녀석의 따뜻하다는 문구는 그다지 신뢰가 가지 않았다. 싼 게 비지떡일 게 뻔했다. 그런데 알면서 난 왜 지른 것일까. 이 놈의 손모가지. 끄응.

며칠 후 물건을 받고 나서 포장을 뜯어보니 생각보다 얇은 편이라 과연 따뜻할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 옷을 오늘 입고 나왔다. 아침 기온이 4도씨였고 겨울바람도 불어서 얼굴이 조금은 시린 그래도 제법 겨울날의 아침이었다. 그런데 이 친구는 손이나 볼을 스치고 지나가는 찬 바람이 전혀 영향이 가지 않게끔 하체를 꼼꼼하게 보호하는 게 아닌가. 좀 더 추운 날 입어봐야겠지만 이쯤 되면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날에도 견딜 수 있지 않을까.


보이는 게 다가 아니긴 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 맛있어 보이는 사진에 넘어가 소갈빗살을 주문하고 말았다. 택배가 출발했다는 알림 톡이 오전 중에 왔는데 오늘과 내일 중 언제 받아볼 수 있을까? 코로나 19가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는 요즘 보이는 게 다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광고 문구와 사진에 빠져 인터넷 쇼핑 지름신의 열렬한 신도가 되어 가는 듯싶다. 아직 광신도 급은 아니니 부디 주말만큼은 이 종교활동을 접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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