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이냐 현실이냐 이것이 문제로다.
며칠 전이었다.
지각이 빠듯한 시간에 회사 엘리베이터를 타게 되었다. 문이 닫히고 엘리베이터 안의 사람들은 이제 엘리베이터에 의해 각자의 층으로 분배되기만 하면 되었다. 그러나 분배를 시작하기도 전인 2층에 멈춰 서는 게 아닌가. 2층에는 사무용품점이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종이박스에 사무용품을 가득 채운 한 아가씨가 출근시간이 빠듯한 엘리베이터 안의 직장인 여럿의 발목을 잡아버린 것이다.
그녀의 양팔에 올려진 박스는 나름 무게가 있어 보였다. 그래서 층수 버튼 바로 앞에 서 있던 난 자리를 양보하였다. 바로 옆에는 성인이 깡충 뛰어 앉아도 부서지지 않을 튼튼한 엘리베이터 손잡이가 있었기 때문에 거기에 박스를 올려놓으라고 말없이 손짓하였다. 그러자 그녀가 눈웃음으로 고맙다는 인사를 대신하며 양보한 자리로 옮겼다.
나란 사람은 그런 사람이다. 매우 친절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크게 손해보지 않는 선에서의 친절이 몸에 밴 사람이다.
그런 내가 며칠 전 한 포털 뉴스에 댓글을 달다가 1주일 댓글 쓰기 정지를 먹었다. 모 뉴스에 쓴 댓글이 운영정책에 위반된다는 것이었다. 자음 이니셜을 쓰면 못 알아먹을 줄 알았는데 AI가 내 머릿속까지 들어왔다 갔나 보다.
그냥 신경 안 쓰고 살고 싶지만 세상은 그리 녹록지가 않다. 어지러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정치적인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그 자리에 있는 이유는 자신의 몫을 다하라고 앉아 있는 것인데 자리가 주는 의무와 책임보다 권력을 이용해 헛짓거리를 해댄다. 그런 그들을 위해 키보드 워리어가 된 이들이 어디 한둘이랴.
그렇게 한 몸 불사르다 보면 가끔은 선을 넘는 단어들이 오가기도 한다. 그런 경우 자음이라든지 혹은 줄 띄어쓰기가 통했던 시절이 바로 얼마 전까지였다. 그런데 AI가 업그레이드가 된 모양인지 이 녀석, 이제 내 마음까지 읽는다. 자음까지 분석해내는 걸 보면 대견하기도 하지만 고약한 녀석이다.
이제 키보드 워리어도 멈춰야 하나?
그래도 말이다. 들리지도 않을 개미의 지저귀는 소리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때로는 다수의 때로는 소수의 목소리를 세상에 알려줄 필요가 있다. 양심이 조금이라도 있노라면 뜨끔 하기는 하겠지. 그가 아니더라도 세상 사람들이 댓글에 공감하며 좋아요를 클릭하는 순간 그 자그마한 숫자가 모이고 모여 더 뜨끔하라고 말이다. 그것이 키보드워리어의 존재 가치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래, 1주일간 휴가 받은 셈 치자.
누가 오늘이 수능일 아니라고 할까 봐 날씨는 아침부터 서러움을 토하고 있었다. 온도가 영하로 떨어진 것은 아니었지만 귀가 시리다 못해 통증이 느껴 올 정도로 바람이 매서웠다. 오전에만 잠깐 그러겠지 싶었는데 점심 먹으러 가는 길에도 매정함은 여전하였다.
사무실 돌아가는 길에 떡 하나를 샀다. 오후 5시 즈음이 되면 간식으로 먹기 위함이었다. 사무실에 와서는 책상 위 구석에 두었다. 한참 업무에 빠져 있다고 생각을 했는데 눈이 자꾸 떡으로 향하였다. 배는 고프지 않았는데 자꾸만 가는 시선을 어찌할 수 없었다.
시간은 4시도 채 되지 않은 시간이었는데 시선은 모니터를 향하고 있었음에도 이미 손은 떡을 감싸고 있는 랩을 뜯어내고 있었다.
'안돼. 이러지 마. 지금 먹을 시간 아니야.'
'괜찮아. 하나만 먹어볼 거야.'
'그래. 괜찮아. 어차피 한 조각인데.'
그러나 입안으로 들어간 떡은 하나가 둘이 되고 둘이 셋이 되어가고 있었다. 총 다섯 개가 들어있었는데 4시도 채 되지 않은 시간에 다섯 모두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이런 몹쓸.
이번 사건을 주동한 녀석은 대체 누구였을까.
1번 눈, 2번 손, 3번 입, 4번 배, 5번 뇌, 6번 기타 등등.
누구에게 유죄 판결을 내려야 한단 말인가.
곧 퇴근이다.
퇴근하는 길에는 붕어빵을 파는 포장마차가 둘이 있다. 하나는 퇴근길 경로에서 약 20걸음 벗어나면 있고, 다른 하나는 퇴근길 경로에 있다. 전자는 붕어빵이 천 원에 3개인데 후자는 천 원에 2개다. 당연히 천 원에 3개인 곳에 가서 사는 게 맞다고 본다. 그러나 20걸음 벗어나 있다는 이유만으로 쉽사리 발길이 가지지 않는다. 지금은 매서운 바람이 몰아치는 겨울이기 때문에 약간의 귀찮음이 발동하는 걸 원치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떡 덕분에 오늘은 붕어빵을 그냥 지나칠 수 있을 것 같다.
퇴근길의 겨울바람이 매서운 덕분에 마스크 틈 사이로 입김이 빠져나가면 안경에는 금세 김이 서린다. 김이 서리면 앞이 잘 보이지 않게 되니 조금 덜 서리라고 숨을 참아보며 호흡을 조절하려 하지만 한참 걷다 보면 숨이 차서 거칠게 뱉다 보면 안경의 김서림은 도저히 막을 길이 없다.
김이 서리는 것도 제각각이다. 한쪽 알은 한참 김이 서리다 보면 크리스마스 트리에 올려진 반짝이 전구처럼 불빛이 반짝거리기도 하고 번져 보이기도 한다. 그러면 다른 쪽은 질세라 무지개색으로 휘황찬란하게 채워진다. 앞이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데 이 예술적 현상은 시키지도 않은 짓을 하며 나를 현혹한다.
걷는 게 불편해서 짜증이 스멀스멀 올라오기는 하지만 잠시 멈춰 서서 이 예술적 현상을 감상도 해본다.
예술이냐 현실이냐 이것이 문제로다.
유난히 더욱 찬 바람이 부는 오늘의 퇴근길에도 예술혼을 담은 빛의 향연이 안경알에서 펼쳐지겠지? 안경이나 열심히 닦고 길을 나서야겠다. 예술이고 나발이고 일단 밥 먹고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