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타쿠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이고 부처의 눈에는 부처만 보인다.

by 생각하는냥

오전 반차를 내어 볼일을 보고 난 뒤 어쩌다 보니 출근해야 할 시간보다 무려 한 시간이나 일찍 회사에 도착하였다. 바로 사무실로 들어가기에는 뭔가 억울하여 근처 커피점에 들려 차 한 잔을 손에 들었다.


회사 근처를 산책하던 중 나름 겨울 옷빨을 자랑하듯 뽐내며 걷는 두 처자가 눈에 띄었다. 그중 한 처자가 가던 길을 멈추더니 건물 유리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너무 마음에 들었는지 사진을 찍어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부러웠던지 동행인까지 합세하여 서로를 찍어주었다. 마치 쇼핑몰의 피팅모델이라도 된 것처럼 사진놀이에 빠진 모습은 남의 시선 따위 신경 쓰지 않는 듯 보였다. 그들의 행위가 재밌어 보이기는 했으나 행여 눈이라도 마주치면 서로 민망해질까 봐 일부러 시선을 피해 주었다.


그런데 고개를 돌리다 보니 구석에서 담배를 피우던 오타쿠 같이 생긴 남자 삼 형제가 눈에 들어왔다. (이 세상의 모든 오타쿠를 욕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이들의 생김새와 행동이 가히 오타쿠스러워 이들을 가칭 '오타쿠 삼 형제'라 부르겠다.) 이 오타쿠 삼 형제는 담배연기를 거칠게 뿜어대며 사진 놀이에 흠뻑 취한 그녀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의 시선은 과하다 싶을 정도로 대놓고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난 그런 오타쿠 삼 형제를 즐기듯 바라보았다.


십여분 넘게 사진을 찍던 그녀들은 이내 자리를 옮겨 제일 가까운 커피점으로 들어갔다. 오타쿠 삼 형제는 커피점에 들어가는 그녀들을 시선에서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그들도 담배 놀이를 마치자마자 어슬렁 거리는 걸음걸이로 그녀들이 들어갔던 커피점으로 향하고 있었다.


정말 이 오타쿠 삼 형제는 커피점 안으로 들어갈지도 모르겠다는 의심이 들 무렵 그들은 커피점 앞을 그냥 지나쳐버렸다. 오타쿠 삼 형제라는 이름을 붙여준 것이 아쉬울 정도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어쩌면 제삼자의 관찰자 시점에서 그들을 오타쿠라고 부른 것은 그들이 오타쿠여서가 아니라 내가 오타쿠라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그들이 조용히 지나쳐간 탓에 모든 상황은 종료되었고 사무실로 가기 위해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엘리베이터로 향하는데 아까 커피점으로 들어갔던 그 두 명의 처자가 아까 들어갔던 커피점의 건물 안쪽 출구로 나오다가 나와 마주쳤다. 그녀들은 나를 알아보기라도 한 듯 아주 잠깐 눈이 마주치자 힐긋거리더니 금세 지나쳐 갔다. 어쩌면 그녀들에게 있어서 오타쿠처럼 보였던 건 그 삼 형제가 아니라 나였을지도 모르겠다.


'저기, 나 그런 사람 아니에요. 사무실이 이 건물에 있을 뿐이라고요'라며 외치고 싶었지만 애써 참았다. 이 말을 하면 왠지 더 오타쿠로 볼 것 같아서.


그래서 무학대사께서 그러셨나 보다.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이고 부처의 눈에는 부처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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