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을 이용하는 사람의 오만가지 감정이 교차할 뿐.
입으려고 찾으면 없다가 입지 않아도 되는 날 찾아지는 마법의 옷장이 있다.
신으려고 찾으면 없다가 신지 않아도 되는 날 찾아지는 마법의 신발장도 있다.
품 안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아이를 하루빨리 출가시키는 마법의 통장도 있다.
하필이면 이 모든 것을 가졌다. 본디 마법은 동화나 판타지 소설에서 주인공을 돕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현실 속의 마법은 유독 나에게 가혹하다. 사실 얘네들은 잘못 없다. 주인을 잘못 만나 관리가 부실해져 생긴 일이다.
사물은 본디 자신의 속성을 가지고 태어났다. 그것을 사용하는 인간이 잘못 사용하고 있는 것일 뿐.
출근길의 사무실로 향하는 엘리베이터는 오늘도 만원이었다. 엘리베이터 최전방에는 한 아가씨가 있었고 첫 번째 문이 열리자 내리려는 뒷사람들 때문에 내렸다 타야 했다. 그런데 그녀가 다시 타려고 할 무렵 문이 닫히는 게 아닌가. 그러나 처자의 눈빛은 흔들림 하나 없이 너무도 태연하였다. 나 같았으면 깜짝 놀란 표정으로 문을 잡든지 버튼을 누르든지 했을 텐데 말이다.
문이 거의 닫힐 무렵 엘리베이터 안쪽에 있던 다른 처자가 열림 버튼을 눌러주었다. 생면부지인 사람이 당연히 문을 열어줄 거라는 믿음이 있었나 보다.
사물은 그대로다. 이용하는 사람의 마음가짐이 서로 다를 뿐.
잠시 1층에 내려갈 일이 있어 다시 엘리베이터를 찾았다. 엘리베이터가 오려면 약간의 여유가 있는 데다 주변에 아무도 없어서 다리를 벌리고 스트레칭을 하고 있는데 스르르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며 사람들과 눈이 마주쳤다. 내려갈 엘리베이터에 집중하다가 그만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방심하고 있었던 것이다.
목적에만 집중하면 주변의 사소한 것을 놓칠 수가 있다.
이윽고 내려가는 엘리베이터에 몸을 싣고 1층에 다다랐다. 문이 열려서 내리려는데 한 처자가 일단 몸부터 들이밀고 들어오는 게 아닌가. '아니 여보세요. 나 좀 내리고 타도 되잖아.' 앞사람이 그리하니 바로 뒷사람도 따라서 밀고 들어왔다. '아니요, 여보세요. 나 좀 내리고 타시라고요.'
사람들은 자기가 실수하는 거 알면서도 앞사람이 하면 쉽게 따라 한다.
사물은 아무 잘못 없다. 그것을 이용하는 사람이 의연하다거나 쇼를 한다거나 불편한 행동을 하는 것일 뿐 사물의 시간과 생각은 언제나 한결같다. 사람의 오만가지 감정이 교차할 뿐이다. 그래서 오늘도 주인을 잘못 만난 나의 통장은 배고프다고 울며불며 내 가슴을 찢어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