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고구마로 보는 원더우먼 1984

욕하면서도 보게 되는 게 디씨의 매력일까.

by 생각하는냥

군고구마다.

편의점 앞을 지나다 보면 섹시한 자태의 군고구마가 옷을 벗어던지고 농후한 속살을 드러낸 채 김을 모락모락 피어내며 뜨거운 유혹을 툭툭 던지는 사진이 붙어 있다. 이런 야한 사진이 들러붙어 있는데 그 앞을 매번 그냥 지나치는 것도 쉽지는 않다.


며칠 전에는 출근길에 사려고 들어갔다가 보이는 곳에 없어서 매장만 둘러보다 삼각김밥만 주워 들고 나오기도 했었다. 그냥 물어보면 되는데 다 팔렸다고 하면 실망감이 엄습할까 봐서 차마 물어보지 못하였다. 아침부터 기죽는 게 싫어서 말이다.


오늘은 그러든지 말든지 작정을 하고 편의점 직원에게 물어보았다.


"군고구마 하나 주세요."


그런데 뭐랄까, 애매하게 주는 폼이 뭔가 이상해 보였다. 잘 안 팔리는 품목을 파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종이봉투에 고이 담아 사무실까지 도달하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책상 정리를 하고 이제 봉투 안에 담긴 고구마를 집는 순간 의심은 현실이 되고 말았다. 군고구마의 첫인상을 좌우하는 것은 뜨거운 열기여야 하는데 미지근한 것보다는 약하고 식어버린 것보다는 따뜻한 어중간한 온도였다. 편의점에서 사무실까지의 거리가 그리 멀지 않았던지라 원래부터 고구마는 어중간한 온도가 아니고서는 설명이 되지 않았다.


군고구마를 반으로 쪼갰으나 그 어중간한 온도의 고구마가 사진 속의 그 뜨거운 자태와 같을 리 없었다. 비슷한 색상이기는 했지만 김 빠진 맥주 같은 느낌이랄까? 입안에서 녹기는 하지만 먹고 싶었던 군고구마의 그 맛은 아니었다.


그래도 아예 먹지 못할 군고구마는 아니었다.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는 어중간한 군고구마긴 했지만 그래도 어설프게라도 먹을 만 하기는 하였다. 다 먹고 나니 진짜 군고구마가 더 먹고 싶어 진다.


서론이 너무 길었나?


영화 개봉 전부터 '원더우먼 1984'에 대한 평가라든지 광고는 호평 일색이었다. 딱히 홍보를 하지 않아도 우리의 원더우먼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거라 생각하였다. 마치 편의점 앞에 붙어있는 군고구마 포스터에 자꾸만 눈이 가는 것처럼 그 존재 자체가 실패할 수 없는 캐릭터니까.

하지만 제작사가 그동안 보여준 모습은 편의점 직원의 행동처럼 뭔가 늘 의심을 사게 했으니 개봉 전의 불안함이 없지는 않았다.

그리고 드디어 개봉을 하였다.


그리고 '원더우먼 1984'는 아침에 먹은 군고구마를 떠올리듯 '어중간한 원더우먼'이라는 짧은 평으로 가능하다. 극장판은 아무래도 드라마에 비해 화려하고 보여줄 게 있어야지 않을까. 그런데 다 보고 나면 기억에 남는 장면이 부족하다. 더러 몇 장면 있기는 하지만 강렬하지가 않다.

우리는 이미 '저스티스의 시작'에서 강렬한 음악과 함께 두둥 하고 등장했던 원더우먼의 인상적인 장면에 각인되어 있다. 그럼 후속작에서는 그에 준하거나 혹은 그보다 뛰어난 연출이 나와야 한다. 제 아무리 원더우먼의 시대적 배경이 과거라 하더라도 원더우먼이 성장을 하는 형태의 영웅이 아니라 그때나 지금이나 초인적인 존재인 것은 마찬가지기 때문에 현재보다 약하게 표현할 필요는 없는데 그냥 1984년에 제작한 것 같은 원더우먼으로 만들어 놓았다. 아마도 감독이 1984년의 티브이 시리즈의 원더우먼의 추억에 빠진 건 아니었을까.


극장판이니까 좀 화려하게 만들었어도 되었을 텐데 하필이면 이 영화에서의 원더우먼은 어떤 계약에 의해 초인의 힘을 잃어가는 원더우먼으로 묘사를 하다 보니 액션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힘을 되찾았을 때 그녀의 최대 빌런인 치타와의 대결 장면에서도 치타의 괴력을 보여주는 장면들을 삽입하려고 노력은 하였으나 그녀를 물리치는 장면은 너무도 순간으로 끝나버려 맥이 빠진다.

이미 본 사람들이 하나같이 말하길 '액션이 부족하다'는 것이 보지 않고서는 이해가 가지 않을 것이다. 정말 이 정도까지 하지는 않았겠지. 근데 정말 딱 그 정도밖에 없다. 이런 소재는 그냥 외전의 형태로 만들어도 되었을 텐데.


게다가 스토리를 보고 있노라면 원더우먼의 이야기가 아니라 마치 '인디아나 존스'와 '미이라'를 조합한 듯한 캐릭터로 전락시키다 보니 몰입도가 방해되는 요소를 기본적으로 깔고 간다. 차라리 채찍을 든 인디아나 존스가 나와도 어색하지 않을 것 같다.


이미 알던 군고구마의 맛이 아닌 군고구마를 먹은 것처럼 '원더우먼 1984'는 아쉽게도 이미 알던 원더우먼의 색소가 빠진 듯했다. 콜라를 마시고 싶은데 콜라 색소가 빠진 탄산만 마신 느낌이랄까. 그러니 우리는 목이 마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행인 것은 주연배우 갤가돗이 '원더우먼' 그 자체였다는 것이다. 이제는 그냥 봐도 원더우먼인 그녀의 존재가 가슴을 설레게 한다. 아마도 다른 원더우먼이었으면 몰입감이 떨어지지 않았을까. 최초 그녀가 배역을 맡았을 때 다소 논란이 일기는 했지만 이제는 누가 봐도 갤가돗이 원더우먼이다. 그래서 스토리도 액션도 마음에 차지 않지만 극장에서 보더라도 후회하지 않게 되는 '원더우먼'이다.


하나 더 위안이 되는 것은 현대를 배경으로 하는 '원더우먼 3'이 제작 확정되었다는 소식이다. 큰 문제가 없는 한 저스티스 시리즈와 더불어 2년 이내에는 나와서 목마름을 해결해 줄 거라고 본다. 그때는 지금까지 보여주지 못했던 긴장감과 화려한 액션을 가득 담아내지 않을까 싶다. 원더우먼 중에서 가장 원더우먼 스러움을 보여줄 거라는 기대를 여전히 내려놓을 수가 없다.


욕하면서도 보게 되는 게 디씨의 매력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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