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 커피

베푸는 자를 미워하는 건 그대가 도둑놈이기 때문이다.

by 생각하는냥

2주 넘게 방치되었다. 아니다. 3주는 되어갈 걸?

지나칠 때마다 방치된 모습이 안쓰럽다. 저렇게 방치될 줄은 몰랐다. 애초에 알았더라면 그들의 운명을 저렇게 방관하지 않았을 것이다. 좋게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닌데 나쁘게 생각하면 무시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지는 않다.


그들의 사연은 이렇다.

하루는 편의점에 갔다가 팀원들 생각이 났다. 그들은 커피점의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좋아라 했다. 그래서 편의점의 캔커피도 좋아라 할 거라 생각하였다. 나름 유명 브랜드의 알루미늄 캔에 들어있는 아메리카노를 집어 들었다. 그들에게 줄 때만 하더라도 고맙다며 좋아하지 않았었던가. 그런 커피가 하나는 사무실 책상 위에서 다른 하나는 탕비실의 냉장고에서 3주 동안 굴러다니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책상을 지나칠 때마다, 그리고 물을 마시러 탕비실을 갈 때마다 은근히 신경이 쓰였다. 그들에게 소유권을 넘긴 이상 그들 마음대로 하게 두는 것이 맞겠지만 그래도 선물이라는 것이 준 사람의 시선에서는 그렇게 방치되는 것이 불편하다.


혹시 기념이라도 하려고 오래오래 보관하고 싶다거나 남들에게 전시하고 싶어서 저리 방치하는 것은 아닐까라고 긍정적인 생각을 해본다. 그런데 그럴 리가 없지 않은가. 그 친구들이 모두 퇴근했을 때 싱크대에 쏟아버리고 없애버리는 완전범죄를 계획도 해봤다. 어차피 그들은 사라진 걸 알지도 못할 것이다. 아니, 안다고 하더라도 내가 범인일 거라고는 생각도 못할 것이다.


마침 어제 회식으로 인해 잠을 편히 자지 못했더니 피로가 몰려와 잠이 솔솔 오고 있었다. 문득 냉장고 안의 아메리카노가 머릿속에 들어왔다. 어차피 3주 넘게 냉장고에 방치되고 있는 거라면 잊어버린 것이다. 이런 생각이 드니 이제 세상에 제일 나쁜 짓을 하기로 작정하였다. 세상에서 제일 나쁜 것 중의 하나인 줬다 뺐는 일 말이다.


일단 탕비실로 들어가 조용히 문을 닫은 뒤 냉장고를 열었다. 그리고 오랜 잠을 자고 있던 커피캔을 흔들어 깨웠다. 잔에 얼음 몇 조각을 넣은 다음 캔커피 뚜껑 돌리는 소리가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게 살살 돌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루미늄 캔이라 뚜껑 따는 소리는 꽤 크게 들렸다. 그래도 방문을 닫았으니 밖으로 소리가 새어나가지는 않을 거라며 놀란 가슴을 타일렀다. 얼음이 들어있는 잔에 커피를 부으니 마시지도 않았는데 벌써 시원함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이윽고 한 입 들이키니 졸리던 잠이 금세 달아나 버렸다.


뭐랄까. 줬다 뺐는 것도 나쁜 짓인데 왠지 도둑질하는 것 같은 이 기분은 대체 뭘까.


몸을 돌려 탕비실을 빠져나가려는데, '아뿔싸'.

분명 탕비실 문을 닫았었는데 문이 열려 있는 게 아닌가. 이 캔커피의 주인은 바로 문 앞에 자리하고 있는 친구인데 분명 뚜껑 돌리는 소리를 들었을게다. 자리로 가는 동안 슬그머니 그 친구를 바라보니 아주 잠깐이었지만 눈빛이 마주쳤다. '헉. 들킨 건가?' 도둑이 제 발 저린다는 게 바로 이런 거구나.


자리에 앉아서 불안한 마음을 다독이고 있는데 회사 깨톡 단톡 방에 알림이 울렸다. 직원 한 명이 탕비실에 간식을 푸짐하게 준비했으니 편하게 꺼내 먹으라는 톡이었다. 괜히 엿 먹은 이 느낌은 뭐지?


베푸는 자에게 고마워야 하는 게 당연한 상식인데 베푸는 자를 미워하게 되는 건 그대가 도둑놈이기 때문이라는 세상의 진리를 배우는 보람찬 하루가 아닐 수 없다. 양심, 불량, 양심, 불량.


빼앗긴 캔커피에도 봄이 오기는 하겠지?


(추신.

회식 술값은 제 명의로 된 개인카드에서 긁어진 것이며 또한 네 명의 조촐한 회식이었음.

이 글의 주제는 "베푸는 자를 미워하게 되는 건 그대가 도둑놈이기 때문이다" 입니다.
소재에 집중하지 말고 주제에 집중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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