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게 필요한 건 문명이 아니라
지하철은 역에 들어서며 서서히 속도를 줄이고 있었다.
울부짖던 소음은 서서히 작아지며 이내 쇠와 쇠가 부딪히는 마찰음이 귀를 찢어버릴 것만 같더니 이내 정차하였다.
환승역이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내렸다.
지하철이 설 때면 가끔씩 지하철을 향해 돌진하는 좀비들이 보인다. 여유를 가지고 다음 열차를 기다리면 좋은데 마지막 열차라도 놓치는 것처럼 무작정 지하철로 돌진한다. 그런 사람들에게 주위 사람에 대한 배려를 기대하기란 어렵다. 그들의 머리에는 99.9% 오로지 타야 한다는 생각뿐이니까.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도 전방에 좀비 출현.
빨간 반 패딩의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황급히 계단을 뛰어 내려오고 있었다. 계단을 구르듯 했다. 생존본능이 빨간 불을 알렸다.
아주머니는 이제 막 지하철에서 내려 무심코 정면으로 걸어오는 젊은 아가씨를 뛰어가는 속도 그대로 두 손으로 강하게 밀쳐내고는 지하철에 올랐다. 그러는 사이 어찌나 세게 밀쳐졌던지 아가씨는 거의 나자빠질 뻔하였다. 다행히 곁에 있던 남자 친구가 여자 친구를 잡아주어 아찔한 위기의 순간은 피할 수 있었다. 너무도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커플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황당한 듯 서로를 바라보다가 지하철 쪽으로 시선을 돌렸을 때에는 이미 지하철은 떠나고 있었다. 커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멀어져 가는 지하철 창틈 사이로 보이는 아주머니의 당당한 뒤통수를 바라보는 것뿐이었다.
내 손에 M60 기관총이라도 있었더라면 커플에게 빌려주었을 것이다.
언제고 좀비들에 의해 큰 사고가 한 번은 나지 않을까 싶다. 문제는 그 좀비가 특정되어 있지 않은 데다가 심지어는 언젠가 내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문명은 발달하는데 사람의 마음이 구석기시대에 머물러 있다면 문명이란 그리 쓸모 있는 것이 아니게 된다. 좀처럼 많아지는 각양각색의 좀비들을 언론매체를 통해 접하게 될 때마다 느끼는 게 있다. 인간에게 필요한 건 문명이 아니라 그 문명을 여유롭게 누릴 수 있는 마음이 길러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굳이 M60 기관총이 필요해지는 일은 없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