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고 싶은 대로 들으려 하고 보고 싶은 대로 보려 하며
날이 무더운 탓에 축 늘어진 채 방바닥을 기어 다녀야만 했던 어느 여름날이었다. 시원해지라고 틀어놓은 선풍기 바람조차 뜨뜻 미지근하게 느껴지며 나른함에 흠뻑 젖어들 무렵이었다. 갑자기 아내가 뭔가 중요한 약속이라도 생긴 것처럼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나가게 옷 입어."
"이 더운데?"
"빨리 입어."
"싫어. 덥잖아."
"차 박람회에 갈 거야."
"차?"
"응. 거기 가면 예쁜 아가씨도 많아."
"어? 아가씨?"
지금껏 잡지나 인터넷을 통해 자동차 박람회를 접한 적은 있었지만 차마 아내와 함께 자동차 박람회를 간다는 것은 생각해본 일이 없었다. 자동차 박람회 하면 차에 못지않게 눈길이 가는 것이 레이싱걸이다 보니 아내와 함께 간다는 걸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자동차 박람회 자체가 야한 문화는 아니지만 왠지 아내와 함께 간다는 것 자체가 조금은 낯선 문화였다. 게다가 아내가 자동차를 그리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기에 갑자기 자동차 박람회를 가자는 말에 솔깃하였다. 님도 보고 뽕도 따는 일석이조의 기회를 굳이 마다할 남자가 어디 있을까.
집돌이였던 터라 평소 같았으면 외출하자는 아내의 애타는 부탁에 외출 준비를 하는데만 족히 두 시간은 걸렸었다. 하지만 그날만큼은 모세의 기적이 일어났다. 십 분 만에 끝나버린 외출 준비라니. 스스로도 놀랄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처음 가보는 자동차 박람회라 무척이나 설레었다. 그때 문득 의문이 들기 시작하였다. 레이싱걸이 득실거릴 그곳에 갑자기 왜 가고 싶어 졌을까? 갑자기 자동차에 대한 애정이라도 싹튼 것일까?
"근데 갑자기 무슨 차 박람회야?"
"나 차 좋아하잖아."
"차를? 언제부터?"
"나 차 좋아하잖아. 녹차, 잎차....."
"....."
아내가 말한 차는 차(Car)가 아니라 차(Tea)였던 것이다. 그 말인즉 그곳에는 레이싱걸이 없다는 걸 의미하였다. 들떠 있던 어깨는 엄청난 상실감에 축 늘어져 버렸다. 설레던 가슴은 한 여름의 무더위로 가득 채워져 답답해졌다. 터보 엔진을 달고 이 뜨거운 여름 거리를 질주할 것만 같던 두 다리는 힘이 빠지더니 일터로 끌려가는 소처럼 천근만근이 되어갔다.
맞다. 일반적으로 모터쇼라고 하지 차 박람회라고 하지는 않는다. 아내는 처음부터 차(Tea) 박람회를 말하고 있었는데 혼자 듣고 싶은 대로 차(Car) 박람회라고 착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은 대체로 자기가 듣고 싶은 대로 들으려 하고 보고 싶은 대로 보려 하며 믿고 싶은 대로 믿으려 한다. 옆에서 누가 뭐라고 해도 자신이 만들어낸 세계에 대해 의문이 생기기 전까지는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려 하지 않는다. 그러는 가운데 어느덧 사이비 종교가 탄생되고 국민을 이롭게 해야 할 정치는 어느새 타락하여 종교화가 되어 간다. 자신들이 만들어낸 국적을 알 수 없는 세계는 오늘도 정의라는 엉뚱한 이름으로 가짜 뉴스들과 버무려져 사람들을 해롭게 하고 있다.
그런데 말이다. 그따위 백해무익한 세계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그날의 무더위를 뚫고 삼성역까지 가야 한다는 현실의 문제가 코 앞이었다. 심지어 차(Car) 박람회가 아니라 차(Tea) 박람회를 위해서 말이다. 분명 거짓말을 한 것도 아니고 일부러 낚은 것도 아닌데 왜 난 한 마리의 붕어가 되어 있었을까?
붕어 붕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