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첫걸음이 어렵다
2시 방향의 여인은 코로나 시국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많은 커피점에서 45도 각도로 하늘을 향해 입을 쩍 벌린 채 명상에 빠져 있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머무는 공간에서 저러기도 쉽지 않을 터인데 얼마나 고단했으면. 그 한가로움 맘껏 즐기시게.
사는 게 다 그렇지 뭐. 고단하지 않은 사람 손 들고 나와.
갈까 말까.
여행을 싫어하고 낯선 곳을 가는 걸 싫어하는 편이다. 그것이 귀차니즘과 버무려지면 햄스터 쳇바퀴 돌리듯 집과 회사만을 열심히 오가게 된다. 거기에 무미건조함이라는 첨가물이 뿌려지면 그 좋아하던 글쓰기조차 게을리하게 된다. 그러기를 무려 1년이 넘어가고 있다. 건조한 혓바닥에 떨어질 레몬 한 방울이 절실히 필요했다.
얼마 전 눈으로만 보아오던 글쓰기 모임 하나가 있었다. 회원은 많은데 글이 잘 올라오지 않아서 유령 모임은 아닐까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지되는 걸 보면 뭔가 있다는 생각에 눈으로만 보아오던 차였다. 그런 모임에서 공지가 올라왔다. 5명 제한의 모임을 한다는 거였다.
한번 가볼까?
글쓰기에 대한 자극이 필요해서 가보고는 싶었지만 괜히 갔다가 삽질만 하다 오면 어쩌나 싶은 불안감이 들었다. 게다가 하필이면 주말인 모임 당일에 회사에 일이 생겨 출근을 해야 했기에 시간도 맞지 않았다. 이미 여러 가지 기준에 의해 모임은 이미 물 건너간 셈이었다.
그런데 이 일을 어쩌나.
일이 빨리 끝나버린 것이다. 게다가 모임의 장소는 회사에서 가까운 곳이었다.
이런 경우를 가리켜 운이 좋다거나 혹은 운명으로 이끄는 거라고 하던가. 평상시 같았으면 집에서 뒹구는 게 임무 수행이었을 텐데 우연히도 출근으로 인해 이미 몸은 집으로부터 탈출을 해 있었고 우연히도 일은 빨리 끝나 버렸고 우연히도 모임은 회사에서 매우 가까운 곳이었으니 이건 빼박이었다.
제 아무리 가기 싫다고 하더라도 핑계를 대려야 댈 수 없을 만큼 완벽한 조건이 성립되었다.
이제 남은 건 뻘쭘함으로부터 나를 단련시킬 한 스푼 분량의 간절한 마음이었다. 그때 모임 앱의 알림이 울렸다. 모임에 참석하신 분이 올리는 톡 하나하나가 참석에 대한 의지를 10%씩 10%씩 채워주었다. 그리고 어느새 손가락은 "참석"버튼을 눌렀다.
그 뒤로는 순탄하였다. 귀차니즘을 뿌리치고 가는 발걸음은 늘 그렇지만 설렘과 기대감으로 사뿐사뿐 가벼워진다. 과연 모임에 나와 있을 사람들은 어떤 얼굴이며 어떤 향기를 뿜어낼까. 레몬은 혀에 닿기도 전부터 향기부터 남다르다. 모임에 도착하기도 전부터 느껴지는 향기가 그랬다. 길치는 아닌데 길치처럼 헤매다 모임 장소에 도착한 것도 그 향기에 잔뜩 취한 탓이었을지도.
상상했던 것과 똑같은 분들이 반겨준 탓에 처음 만남인데도 불구하고 낯설지 않았다. 편안한 나머지 시선 둘 곳이 많았고 입은 이미 방언 터지듯 술술 나오고 있어 오히려 오래 말한다고 눈치 주지 않을까 걱정할 정도였다.
평소 같았으면 2시 방향의 옆 테이블에서 하늘 향해 45도 각도로 입을 쩍 벌리고 자는 여인의 모습이 혐오스러웠을 것이다. 그러나 기분이 좋을 땐 뭐든 긍정적으로 보이기 마련이다. 볼썽사납게 자고 있던 모습조차 한가로움이 느껴져 다정하게 보였다.
딱 바라던 모임이었다. 글쓰기에 대한 스킬이 아니라 글쓰기에 대한 생각을 채울 수 있는 자유로운 분위기, 원하는 그림이었다. 시간이 금세 지나가버려 글을 마무리 짓지 못하고 자리를 일어나야만 했지만 깊은 구덩이에 빠져있던 글 쓰는 재미를 다시 끄집어낸 것만도 어딘가.
낯선 곳에 가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원하던 그림을 보고 친숙한 향기를 맡을 수만 있다면 낯섦은 이미 낯섦이 아니다. 항상 첫걸음이 어려울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