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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하는냥 Nov 23. 2022

오해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

폰을 만지작 거리고 있는데 폰 너머로 자리에서 일어나는 이가 보였다. 앉을까 말까. 주변을 둘러보니 앉으려는 사람이 없었다. '이제 저 자리는 내 겁니다.'


지하철에서 빈자리가 생기면 당연히 앉는 게 좋겠지만 앉는 것이 오히려 불편할 때가 있다. 옆 자리에 쩍벌남과 같이 민폐를 줄 것 같은 사람이 앉아 있거나 혹은 고래같이 등치 있는 남자 둘 사이에 새우처럼 끼어 앉는 경우가 그러하다.


다행히 우 여자 좌 남자 모두 민폐와는 거리가 멀어 보였기에 마음 놓고 엉덩이를 들이밀었다. 혹여나 지하철의 작은 흔들림 때문에 옆 사람에게 쓰러지는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나름의 중심을 잡아가며 벌처럼 날아서 나비처럼 사뿐히 앉았다.


그런데 앉자마자 우 여자 좌 남자가 동시에 일어서더니 건너편 빈자리로 이동하는 게 아닌가. '오 마이 뻘쭘'. 하필이면 그 타이밍에 왜 동시에? 잠시 동안이었지만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냄새가 났나? 아니면 노숙인의 향기가 피어올랐나? 혹시 옷을 이상하게 입은 건가? 어쩌면 남대문이? 고개를 숙여보니 이상무. 옷소매 냄새를 맡아봤는데 멀쩡하였다. 어쩌면 코가 중독되어서 냄새를 맡지 못하는 걸지도 모른다.


건너편으로 이동한 우 여자는 두 눈을 감고 깊은 명상에 빠져 들었고, 좌 남자는 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 둘에게는 건너편에서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을 하고 있는 한 사내가 안중에도 없었다.


아니야. 아닐 거야. 아닐 거라고 나름의 세뇌를 하며 뻘쭘함을 이겨내고 있는 가운데 오른쪽 빈자리와 왼쪽 빈자리는 금세 채워졌다. 그제야 미소를 지었다. '씩'


하필이면 그 타이밍에 건너편에 사람들이 제일 선호하는 오른쪽과 왼쪽 끝 자리가 비었고

하필이면 그 타이밍에 우 여자 좌 남자가 그 건너편 빈자리를 동시에 발견하였고

하필이면 그 타이밍에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났고

하필이면 그 타이밍에 세상에서 가장 소심한 사람 중 한 명이 그 둘 사이에 앉으려 했던 것이다.


살다 보면 하필이면 모든 게 딱 맞아떨어져서 오해를 불러일으키게 하는 일이 생긴다.


오해 없이 사는 게 가능할까? 아니다. 서로의 삶과 생각이 다른데 오해 없이 산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어차피 오해는 살 수밖에 없으니 그보다 중요한 건 오해를 푸는 일이 아닐까. 그러나 생긴 오해를 풀려고 하지 않는다면 그건 그들의 안중에 내가 없다는 것이다. 어차피 너랑은 모르는 사이인 데다가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사이니까 굳이 오해를 풀 필요도 없는 것이다. 사는 데 지장이 없는데 누가 애써 오해를 풀려고 할까. 오해를 산 채로 가겠다는 건 너와 난 남남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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