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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하는냥 Nov 24. 2022

선행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

지하철 에스컬레이터를 오르는데 앞에 서 있던 사람이 뛰기 시작하자 반사적으로 덩달아 뛰었다. 승강장에 도달하고 보니 지하철 문이 열린 사이로 사람들이 내리고 있었다. 재빨리 뛰는데 희미하게 안내방송이 들렸다. 문을 닫는다는 안내 방송이었다.


'안돼'


밥 달라는 반려견보다 더 애절한 눈빛을 기관사에게 날려 보았다. 사람들이 말하길 눈빛 칭찬을 종종 했던 바 반반의 확률로 먹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나 우리 기관사님은 프로다. 프로는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다. 기관사님은 가차 없이 문을 닫고 힘차게 앞으로 나아가셨다. 불과 10보 남겨두고 말이다.


불행하게도 그 10보 때문에 다음 열차까지 30분을 더 기다려야만 했다. 무궁화나 KTX를 기다리는 것도 아니고 대낮의 대한민국 수도 지하철에서 다음 지하철까지 30분이나 기다려야 하다니.


겨울 날씨 치고는 따뜻한 가운데 겨울 점퍼를 입고 뛰다 보니 금세 더워졌다. 땀이 나 점퍼를 벗고 퍼진 라면처럼 흐느적거리며 사람들이 없는 승강장 끝쪽으로 걸었다. 입은 삐죽 튀어나와 온갖 불만의 단어들을 방언하듯 내뱉는다. 물론 마스크에 가려져 입모양은 남에게 들키지 않게 말이다.


승강장 끝쪽 벤치에 앉아 쉬려는데 새하얀 케이스가 눈에 들어왔다. 이게 뭐하는 물건인고?

케이스 뚜껑을 열어보니 녹색 충전 LED에 불이 들어오며 번쩍번쩍 하얀색 광을 내는 에어팟 두쪽이 거친 숨을 뿜어대고 있었다.


심봤다.

이제 이건 제 겁니다.


당근마켓? 얼마에 팔지? 아주 잠깐 동안 사심에 사로잡혔다.


하지만 이곳이 어디던가. 대한민국의 지하철 아니던가. 분실물센터라는 매우 친절한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아니한가. 먼저 벽에 붙어 있는 안내도에 쓰여 있는 역무실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에어팟을 주웠다 하니 이내 역무원이 달려왔다. 두리번거리는 역무원을 향해 먼저 다가가 에어팟을 건네니

'감사합니다'라고 하였다.


감사합니다? 응? 본인 거도 아닌데 왜 감사하지? 설마 꿀꺽인 건가? 에이 설마.


아. 오늘도 착한 일 하나 했으니 인간적으로 신께서 눈깔사탕 하나 정도는 내려주시지 않을까? 아니면 로또라도?


하지만 인간적으로는 뭐라도 혜택 하나 주는 게 인지상정일 테지만 신께서 말씀하시기를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 하셨다. 그 말의 의미를 어렸을 때에는 선행은 남 모르게 해야 한다라는 직관적인 의미 정도로만 생각했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그 말은 착한 일을 하더라도 신의 입장에서는 관여치 않을 것이다라는 것이기도 하다. 모르게 하라 했으니 당연히 신도 모르겠지. 알아도 모르는 척하겠지. 그러니 칭찬에 대한 보상 따위는 생각지도 말라는 말 아니겠는가. 착한 일 한 사람이 신의 보상으로 백만장자가 되었다는 인간은 흥부 빼고는 못 본 것 같다.


그래도 말이다. 착한 일을 하고 나면 뭔가 뿌듯하다.

눈깔사탕 백만 개까지는 아니어도 서너 개 정도 먹은 것처럼 마음이 달달해지니까 말이다. 가슴 안쪽에 사는 양심이라는 녀석이 가끔 얼굴을 빼꼼 내밀곤 하는데 이 녀석이 엄청 좋아라 하는 간식이라서 챙겨주지 않을 수가 없다.


그리고 나란 녀석을 위해 로또 한 장 정도는 사 보련다. 혹시가 혹시를 낳을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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