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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하는냥 Nov 25. 2022

빌런

오늘의 출퇴근 길에는 또 어떤 빌런이 기다리고 있을까?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던 중 이어폰 틈새로 낯선 음악 소리가 들려왔다. 지하철 안에서 이렇게 크게 들릴 정도면 지하철 안내방송 말고는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그런데 기관사님이 틀었다기엔 노래 템포가 다소 빠른 데다 음질은 구렸다. 이상함을 감지하고 이어폰을 빼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건너 30도 각도 약 10미터쯤에서 빌런을 발견하였다.


빌런은 지하철 문을 등진 채 한 손에는 음악소리의 근원지로 보이는 휴대폰을 들고 위아래로 들었다 내렸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정상인과는 뭔가 거리가 멀어 보였다. 그냥 피식 웃고는 다시 이어폰을 꽂으려는데 그가 다리를 들어 힘껏 뒷발질을 하는 게 아닌가. 뒷발질은 지하철 문에 강하게 부딪혀 굉음을 일으켰다. 그제야 놀란 주변 사람들이 빌런을 바라보았고 그중 몇몇은 자리에서 일어나 다른 칸으로 이동하였다.


그는 주변 사람들이 바라보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음악에 취해 있었다. 쿵 소리를 왜 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에게 있어서 드럼을 치는 키포인트였던 것 같다.


이제 판단해야만 한다. 혹시 모를 위협으로부터 떠나 다른 칸으로 이동할 것이냐 아니면 그냥 있을 것이냐.


오래 누적된 지극히 주관적인 빅데이터에 의하면 그의 폭력성은 극히 본인에 국한된 것일 뿐,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 것 같지는 않았다. 위험한 빌런이었다면 아마도 진작에 타인을 공격했을 것이다. 게다가 10미터 정도의 거리라면 충분히 위험에 반응할 수 있는 거리라 판단되었다.


다시 이어폰을 꽂고 My Playlist를 들으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목적지로 향하였다. 다행히 내릴 때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지하철에는 별의별 사람들이 다 모인다. 짧은 여행이긴 하지만 의도치 않게 그들과 함께 하다 보면 불편을 줄 사람인지 아닌지 판단을 할 필요가 있다. 그런 판단을 하다 보니 소소한 데이터들이 누적이 된다. 쩍벌남이라든지 혹은 코로나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미모를 뽐내고 싶은 안 생긴 사람이라든지 (왜 못 생긴 사람일수록 마스크 착용을 잘 안 하는지 모르겠다.) 혹은 지극히 평범하게 생겼는데 갑자기 공격성을 드러내는 사람이라든지 기타 등등 기타 등등.


그 소소한 빅데이터가 정확한 결과를 내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짧은 여행을 하는 데 있어 불편하지 않을 정도의 도움은 된다. 오늘의 출퇴근 길에는 또 어떤 빌런이 기다리고 있을까. 가슴이 두근거린다. 두근세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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