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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하는냥 Nov 28. 2022

겨울이 오면

차디찬 겨울에 로맨스 영화 한 편을 새겨보자.

커플의 단내 나는 꼼지락 거림이 하도 귀여워서 자꾸만 눈이 갔다. 풋풋한 커플의 작은 움직임에서 자그마한 하트들이 쏟아져 나올 것만 같았다. SNS의 올려진 영상이라고 한다면 '좋아요'를 여러 번은 눌러줬겠지. 어쩌다 보니 서 있는 자리가 커플 앞이었다.


지하철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다음 역 안내 방송이었다. 다음 역이 환승 역이다 보니 유독 많은 사람들이 움직였다. 자리를 옮기려고 주변을 무심코 두리번거리는데 방금 전까지도 하트를 쏟아내느라 정신없던 커플 중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그러자 그녀는 건너편 빈자리를 손으로 가리켰다. 마스크를 썼지만 해맑은 미소의 눈빛이 저기 앉으라고 하였다. 순간 천사에게 홀린 것처럼 몸이 반사적으로 움직여 그녀가 가리킨 빈자리에 앉았다. 굳이 앉을 생각까지는 없었는데 훈련된 강아지처럼 왜 그리 잘도 움직였을까.


그녀는 착한 일을 하고 나서 뿌듯하기라도 했던 모양인지 두 다리를 쭉 뻗어 앞으로 내밀었다. 흔히 아이들이 하는 행동처럼 말이다. 그걸 본 남자 친구가 발을 내리라고 손짓을 하였다.


문득 오랫동안 묵혀 있었던 연애의 추억들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당연히 떠오른 추억들은 아름다워야 했는데 자세히 들춰보니 기억의 대부분은 뭐 하지 마, 뭐 하지 마, 뭐 하지 마 라며 여자 친구에게 잔소리를 퍼부어 댔던 것들이었다. 하필이면 한 때 하남자였던 시절의 못된 추억들이 떠 올랐을까. 순간 머리를 흔들며 추억들을 다시 파묻었다.


다음 정차역에서 두 여자가 건너편 쪽에 섰다. 손잡이를 잡고 있던 오른쪽 여자가 손을 내리더니 친구로 보이는 왼쪽 여자의 뱃살을 군데군데 만지작거렸다. 그러자 놀란 친구는 그 손을 뿌리치더니 복수의 일념으로 손을 뻗어 오른쪽 친구의 뱃살을 만졌다. 서로 웃는 사이 그녀들 뒤로 연극을 보는 것처럼 관객이 있었을 거라는 걸 그들은 알았을까? 알아도 상관없었을 것이다. 그 정도 사이라면 진한 친구였을 테니까.


목적지에 다다라서 내리는데 꼼지락 거리던 커플도 같이 내렸다.


남자는 폰을 계속 바라보며 계단을 오르고 있었고 여자는 옆에 따라가다가 조금씩 뒤로 처지다가 계단을 다 오를 즈음 남자 친구를 재빨리 앞질렀다. 그제야 폰만 보던 남자는 뒤돌아 여자 친구를 찾았으나 보이지 않으니 당황해했다. 이미 앞질러 갔다고 알려줄까 생각하던 찰나 앞질러 갔던 여자 친구가 되돌아와 당황해하는 남자 친구의 옷자락을 끌어당겼다.

어디선가 많이 본모습에 '피식'하고 웃으며 걸음을 재촉했다.


겨울이 코앞이라 그런지 지하철 안의 소소한 풍경이 로맨스 영화들을 소환시키곤 한다. 겨울이면 조지 마이클의 '라스트 크리스마스'를 시즌 내내 배경으로 깔고 살았고, 장대하면서 아련했던 '닥터 지바고', 아름다웠지만 슬펐던 '러브스토리', 크리스마스 종합 사랑 세트 같은 '러브 액츄얼리' 같은 영화를 재생하며 차디찬 겨울날을 따뜻하게 보냈었다.


언제부턴가 겨울을 위한 로맨스 영화의 수는 생산 중단이 되어 버린 비 인기 품목이 되어 버렸다. 기억할만한 명작이 나오지 못하는 것은 돈이 안 되는 걸 안 제작자가 더 이상 만들지 않거나 혹은 코인이나 주식, 그리고 부동산 같은 현실적인 이슈에 감염된 소비자들이 좋은 영화가 나와도 놓쳐버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겨울의 시작부터 따뜻한 로맨스 영화 한 편으로 가슴을 달래 볼까 한다.

로맨스를 보려는데 '관능적 로맨틱 영화'라는 장르가 강하게 들어온다.

대체 왜 네가 거기서 나오는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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