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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하는냥 Nov 23. 2022

깨우침

원효대사의 해골물

며칠 전이었다.

한 사내가 문 앞에 서성이고 있었다.


그는 눈에 띌 정도로 긴 머리를 하고 있었다. 나름의 정돈이 된 듯해 보였지만 산발에 가까운 관리되지 않은 머릿결이었다. 옷은 나름의 깔끔한 듯 보였지만 자세히 보면 그다지 깨끗한 옷은 아니었다. 


지하철 문이 거친 공기 소리를 뿜어 대며 닫히려고 할 즈음 서성이던 그가 빠른 걸음으로 문을 향해 몸을 움직였다. 그제야 그의 발이 눈에 들어왔다. 슬리퍼를 신은 그의 발은 진한 회색 양말이다? 응? 아니다. 양말이 아니다. 구멍이 난 듯 살색이 보이며 이내 양말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경악을 금치 못할 소름이 돋았다. 순간 반사적으로 그를 밀쳐내기 위해 오른쪽 다리에 힘이 들어갔다. 깜짝 놀라 순간 반응한 것이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그가 지하철에 탑승하기 전 문이 닫혔다. 


그가 지하철을 타지 못한 것에 대해 안심을 하는 건 이기심일까, 아니면 정상인 걸까. 아, 그보다 당분간 족발 주문 금지다. 


다음 날이었다. 


어제의 그 역을 지나가던 중이었다. 어제와는 반대 방향으로 타고 있었기에 누가 타는지는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저 무심코 유리창 너머 어둠에 반사된 지하철 안의 풍경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뒤에 무언가 심상치 않은 사람이 서 있는 것 같아 바로 뒤를 바라보았다. 아뿔싸. 어제의 그는 아니었지만 또 다른 노숙인이 옆에 널빤지를 낀 채로 서 있는 게 아닌가.


깜짝 놀라 성급히 다른 칸으로 옮겼다.


연 이틀 노숙인과의 조우는 예상치 못한 일상의 전개였다. 어쩌면 타성에 찌들어 나태해져 가는 삶에 대한 반성의 시간을 가져보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가끔 노숙인을 보면서 이런 다짐을 하곤 했었다. 어찌 살더라도 노숙인만은 되지 말자고. 전쟁이나 혹은 강압에 의한, 또는 의도치 않은 사기에 의해 부득이하게 노숙인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게으르거나 나태해져서 노숙인이 되는 것만은 경계하자는 그런 다짐 말이다. 그걸 다시 끄집어낸 것이다.


당나라로 떠나려던 원효대사는 간밤에 마신 해골물로 깨우침을 얻고 발걸음을 돌렸다 한다. 그렇다면 출근길이었던 나도 발걸음을 되돌려 다시 집으로 향하는 건 어떨까. 그건 안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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