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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하는냥 Jun 10. 2022

제사보다 젯밥

제사보다 젯밥에만 관심을 가지게 한 건 제작자일까 아니면 사용자일까

지금은 없어졌지만 어느 지하철역에 붙어 있던 대형 광고판에는 산부인과 광고가 있었다.  광고 사진에는 의료진의 보살핌 속에 욕조에서 출산하는 부부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그냥 평범한 일상의 광고라 생각하여 한참을 무심코 지나쳤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광고의 오점이 눈에 들어왔다. 광고 속 남편은 동양인이었고 아내는 서양인이었다. 여기까지의 흐름은 지극히 문제가 아니었다. 그런데 뜬금없이 엄마 품에 안겨 있는 아이가 흑인이었다. 동양인 아빠와 서양인 엄마 사이에서 흑인 아이가? 혹시나 싶어 구글링을 해봤지만 그런 경우는 있을 수 없다고 한다. 이것은 기적이다.


어떻게 하면 이런 일이 가능할 수 있을까?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을 유추해보았다. 예를 들어 서양인 아내가 임신을 한 채 재혼을 했다는 지극히 정상적 장르의 설정이거나 혹은 서양인 아내가 불륜을 저지르는 문제적 장르의 설정이거나. 개인적으로 후자의 가능성에 힘이 더 쏠리는 건 뭐 눈에는 뭐 밖에 보이지 않아서 일지도 모르겠다. 그 광고 앞을 지날 때마다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이 떠오른 건 비단 나뿐만은 아니었을 것 같다.


사람들은 막장 스토리에 끌린다. 내 일이 아닌  남의 이야기라서 다행인 것이고, 그래서 도덕적인 일보다 흥미로운 남의 일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남의 집 불구경 않는 군자 없다'는 속담이 괜히 있는 건 아닐 것이다.


지금은 그 자리에 다른 광고가 자리 잡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흥미로웠던 산부인과 광고 덕분에 여전히 그 잔상은 남아 있다. 그러나 그 잔상에도 불구하고 정작 중요한 그 산부인과의 이름을 아직까지 알지 못한다. 제사보다 젯밥에만 관심을 가지게 한 건 제작자일까 아니면 사용자일까. 그렇게 만들었으니 사용자가 그렇게 보는 것인지 그렇게 만들지 않았는데 사용자가 그렇게 보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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