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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하는냥 Dec 05. 2022

9%

이런 미친

아팠나?

아픈 줄은 알고 있었는데 그렇게까지 아픈 줄은 몰랐다. 그냥 가볍게 지나쳤을 땐 아무렇지 않더니 아프다는 걸 인지하고 나니 더 아파진다. 차라리 모르고 있었을 때가 더 나았다.


왜 그랬을까?

하지 말아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하고 말 때가 있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는데 터트리고 보니 이미 늦었다.


며칠 전 음식을 먹다가 윗입술을 깨물었고 그 깨문 자리가 결국 헐어 버렸다. 그래도 며칠 동안은 크게 아프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 닦다가 따끔거리게 반복되고 그런 부위를 혀로 만지작 거리고 나서야 아프다는 걸 인지하게 되었다. 그 후부터 식사를 하든 물을 마시든 뭘 해도 아프다는 걸 알아 버렸다. 어쩌면 아팠는데 크게 신경 쓰지 않아서 기억을 하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시간이 점심을 넘긴 지 오래라 배가 몹시도 고파왔다. 이웃집 민족을 소환하여 할인쿠폰이 있는지 배송비가 얼만지 따지다 보니 어느덧 선택 장애에 빠지고 말았다. 한참 동안 이것저것 클릭하다 겨우 힘들게 하나를 골랐다. '낙지덮밥'이었다. 평소 매운 음식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런데 뭐라도 홀린 듯 꽂혔다. 매운 음식을 먹고 나면 항상 속이 불편해서 가급적 안 먹는데 휴일이랍시고 괜찮겠다 싶어 고른 음식이었다.


이윽고 음식이 배달되어왔고 포장을 뜯어보니 새빨갰다. 그리고 곧바로 매콤함이 코를 찔렀다. 비빈 후 한 숟가락을 떠먹고 나서야 깨달았다. '나, 입술이 매우 아팠구나.' 순간 너무 아파 저도 모르게 욕이 튀어나왔다. 낙지덮밥이 원래 이렇게 매운 음식이었던가? 소방차를 소환하고 싶을 정도로 불이 났다. 거친 운동을 해야만 나오는 거친 숨소리가 따라왔고 그토록 매운 것이 입술 상처를 자극하였다. '내가 미쳤지.'


그런데 먹다 보니 맛있었다. 미치도록 맵고 엄청나게 아팠는데 고기만두 3개를 추가 주문했던 것이 신의 한 수였다. 적절한 시점에 만두가 매콤함을 잡아주니 더없는 조합이었다. 만두는 마치 새벽에 치른 포르투갈 전에 투입된 특급 조커 황희찬 선수 같은 느낌이랄까?


평소 황희찬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는데 그때 그 느낌은 정말 남달랐다. 황희찬이 투입되었을 때 몹시도 몸이 가벼웠고 볼 컨트롤이 더없이 좋았다. 기세는 대한민국 편이었다. 거기에다가 대한민국 스포츠는 언제나 드라마틱하지 않았던가. 후반 추가시간이 주어졌다. 대한민국만의 드라마틱한 매콤한 시간이 된 것이다. 손흥민의 전력질주와 환상적인 패스, 그리고 그 시점에 거기 있어야만 했던 것처럼 달려온 황희찬이 골을 받자마자 그의 슛은 골로 이어졌다. '이런 미친.'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긴 8분이 이어졌다. 우루과이 vs 가나 전의 추가 시간이 8분이었다. 그 8분 동안 우루과이의 추가골이 나오면 탈락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신은 대한민국의 손을 들어주었다.


'16강 진출'.


흥분한 마음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종일 승리의 기쁨으로 들떠 있었다. 그렇다. 그 들뜬 마음에 종일 조종당하고 있는 탓에 매콤한 것을 뻔히 알면서도 낙지덮밥을 그리 쉽게 주문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가시킨 고기만두가 그렇게 환상적인 조합을 가져올 거라곤 생각도 못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적응한 혀도 매콤함을 견뎌 주었다.


그렇게 아팠던 윗입술은 만 하루가 지나고 나니 완전 덜 아프다. 고통은 고통으로 치유하는 걸까? 아니면 나을 때가 돼서 나은 것일까. 아니면 기분이 너무 좋아서 엔도르핀이 닥터피시처럼 치유라도 해준 것일까?


가나전에서 패했던 대한민국이 16강에 오를 확률은 단 9%의 확률이었다고 한다.

강호 포르투갈을 반드시 이겨야만 했고, 우루과이가 가나를 이기돼 많은 점수를 내면 안 되는 정말 미친 조건이 뒤따라야 진출할 수 있었기 때문에 애국배팅이 아니면 그 어느 누구도 쉽게 대한민국의 손을 들 수 없었던 상황이었다.


이제는 알아버렸다. 9%가 절대로 작은 확률이 아니라는 것을. 9% 이하에 절대 좌절하지 말기를 바라본다.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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