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생각하는냥 Dec 06. 2022

꼰대 라테

라테 없이 당신은 거기에 서 있을 수 없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버스 운전석 옆에 붙어서 기사 아저씨에게 뭐라 이야기를 하고 있는 머리 희끗한 아저씨가 눈에 들어왔다. 처음에는 몇 마디 하고 말겠지 싶었는데 계속 이어지는 것이다. '어? 저러면 안 되는데?'


버스가 신호등 앞에 서니 또 뭐라고 뭐라고 구시렁구시렁. 도저히 안 되겠다 싶었다. 그러나 발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던 중 따지고 있던 아저씨가 잠시 몸을 돌렸다. 그제야 아저씨의 가슴에 붙어 있는 명찰이 눈에 들어왔다. 'xx운수'


기사분에게 따지고 있던 게 아니라 업무 인수인계를 하고 있던 중이었던 것이다. 말투가 따지던 투라서 괜히 오해하였다. 괜히 나섰다가 얼마나 민망할 뻔하였나.


그렇게 안심하고 있던 찰나 인수 인계자로서 하는 흔한 라테 시전이 이뤄졌다.

"지금은 점심시간도 있잖아요. 전에는 점심시간도 없었어요. 지금은 많이 좋아진 거지."


흔히 라테 시전을 하면 꼰대라 하여 많이들 싫어라 한다.


그런데 말이다.


라테는 역사다. 개인의 역사이며 집단의 역사이며 생활의 역사이다. 그것은 경험이며 데이터이며 삶의 지혜이다.


라테 없이 당신은 거기에 서 있을 수 없다. 이미 선배들이 갈고닦아 놓은 길을 편안하게 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감사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또 라테 시전이라며 '꼰대'로 폄훼하는 것은 유행이 삶의 지혜를 무참하게 짓밟는 행위다.


 다만 라테 시전으로 자랑질을 일삼는 '라테 나르시시스트'가 꼰대일 뿐, 험난한 길을 잘 닦아놓은 선배들의 노고까지 깍아내리지는 말자. 라테를 꼰대로 정의 내리는 실수는 이제 멈춰야만 한다.


지극히 주관적이긴 하지만 라테는 사랑받아야 할 자산이다.


운전수 뒷좌석에 앉아 하나라도 더 많은 조언들을 쏟아 놓는 머리 희끗한 아저씨의 뒷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어쩐지 쓸쓸하다.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9%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