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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하는냥 Dec 07. 2022

유리 멘털

딱 남에게 피해 안 줄 만큼만

스마트폰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손이 내려와 폰을 강하게 내리쳤다. 폰에서 멀어져 가는 손으로 시선을 따라가 보니 흰머리는 희끗희끗하지만 정정해 보이는 어르신이었다. 지하철 손잡이를 잡고 있다가 내리려고 하던 중에 부딪힌 것이다. 워낙 세게 부딪혀서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을 텐데 미안하다는 눈빛 한 번 안 준다.


그냥 넘겨도 되는데 마음의 상처를 얻어 간다.


평소 자주 지나가던 꼬마김밥 집에서 들려 꼬마김밥 2줄과 어묵 하나를 시켰다. 늘 조용했는데 그날은 유튜브 방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요즘 관심사인 정치 이슈에 대한 내용이었다. 흘려 들어도 됐는데 듣고 있자니 유튜버의 발언이 계속 거슬렸다. '저분은 저런 걸 듣고 있었구나?' 일주일에 두세 번은 가던 꼬마김밥 집이었다. 이미 주문한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그대로 그 가게는 마지막 방문이 되었다.


그냥 넘겨도 되는데 마음의 상처를 또 얻어 간다.


이미 질 걸 예상했던 월드컵 브라질 전이었다. 이미 포르투갈 전에서 모든 걸 쏟아냈기에 화력이 모자랐고 휴식이 겨우 이틀뿐이었다. 게다가 상대는 영원한 우승 후보 최강 브라질이다. 총력전을 치른 다음 경기에서 이길 확률은 거의 제로다. 그래도 16강에 올라 열심히 뛰는 선수들의 모습을 보면서 에너지 충전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전반 13분 어이없는 심판의 판정에 기대는 산산이 부서져 버렸다. 수비가 걷어내려고 하는 타이밍에 상대 선수가 발을 가져다 댔는데 그걸 페널티를 준 것이다. 해설자는 페널티를 줄 수도 있고 안 줄 수도 있고 오로지 심판의 재량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그게 상식이냐? 그럼 앞으로 모든 공격수는 수비수 뒤에 있다가 걷어내려고 할 때 발만 살짝 들이대도 페널티킥 편하게 얻을 수 있겠네. 거기서부터 대한민국은 급격하게 무너져 버렸다. 제 아무리 볼에 칩을 심어봤자 심판 자질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데 과학이 적용된들 무슨 소용인가.


에너지 충전은 개뿔이고, 마음의 상처 추가다.


나이를 먹으면 멘털이 세질 거라고 생각했었다. 어른이 되면 누구나 진짜 어른이 되는 거라고 말이다. 그런데 막상 어른이 되고 보니 최소한 지극히 주관적으로는 멘털이라는 게 어릴 때랑 크게 다르지 않다. 철들면 좀 나아질까 싶어 한해 보내고 또 한해 보냈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먹을 만큼 먹어버린 나이가 되었고 이 나이에서 바라보니 멘털은 세지기보다는 더 약해지더라.


누군가 그랬다.

'유리 멘털이군요.'

강하게 반박을 하긴 했었다.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 이랬는데. 뜨끔.


누군가의 비아냥 거림에 심장이 쿵쿵거리고 뭐라도 안 맞는 것 같으면 바로 날을 세운다. 누가 봐도 유리멘탈이라는 게 쉽게 들통난다. 유리 멘털의 소유자들은 작은 바람에도 이는 물결처럼 상당히 예민하다. 강물 위를 보고 있기만 해도 바람이 얼마나 센지 알 수 있지 않은가. 그렇게 티 나는 걸 어찌 막을 수 있으랴.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세상 풍파를 겪다 보니 유리화되어가는 멘털에 비해 키워지는 것이 있더라. 바로 뻔뻔함이다. 뻔뻔하게 아닌 척하는 것 말이다. 괜찮은 척, 화 안 난 척, 꽤 착한 척, 아무렇지 않은 척, 강한 척. 물론 얼마 지나지 않아 금세 간파되고 말지만 아주 잠시 동안은 먹히는 뻔뻔함이다. 때로는 그냥 뻔뻔하게, 때로는 막무가내로 뻔뻔하게, 때로는 무지막지하게 뻔뻔해지다 보면 변검술에 가까운 가식덩어리로 뭉친 가면을 수시로 바꾸면서 착용할 수 있게 된다.

다만 가급적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 만큼의 뻔뻔함이긴 하지만 가끔 수위 조절에 실패해 누군가의 욕을 들을 수밖에 없음은 단점이다. 착하게 살려는 강박관념에 빠져 이 상황을 이겨내기 힘들었던 적도 있긴 했지만 뻔뻔해지니 그러든지 말든지. 딱 남에게 피해 안 줄만큼만. 딱 그만큼만이 최선이 아닐까.


누군가에게는 오늘도 무사히,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오늘도 고단한 그런 하루가 지나간다.

그 하루 동안 그대의 멘털은 안녕하셨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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