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편안하게 잠을 자고 싶은 욕구 때문이었다.
어쩌다 보니 이른 퇴근이었다.
평소엔 어둑어둑 해질 무렵에야 겨우 했었는데 이제 밝은 햇빛이 가득한 시간에 퇴근이다.
늘 야근에 절어 살던 때가 있었다. 사회 초년생일 때는 회사에서 시키니까 했던 야근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정시에 퇴근하면 눈치가 보였고 그렇게 하다 보니 어느덧 야근은 습관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제 야근은 없다. 지금이 바로 그런 퇴근인 것이다.
야근에 찌든 늦은 퇴근엔 술냄새와 지친 사람들로 공기가 무거웠지만, 햇살이 가득한 시간의 이른 퇴근은 팔딱거리는 활어처럼 저마다 생동감이 뿜어 넘쳐흘렀다.
신호등을 건너 집으로 향하려던 찰나, 바닥에서 번쩍번쩍 빛나는 무언가가 눈에 들어왔다. 늘 빛바랜 것만 보다 이런 쌘삥을 마주한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주민등록증이었다.
'분실한 사람이 다시 찾으러 오지 않을까.'
'아니, 누군가 주워가면 낭패잖아.'
'괜히 주웠다가 어떤 복잡한 일에 엮이면 어쩌지.'
근처에 우체통이 있었던가? 아는 우체통이 없었다.
'그럼 제일 가까운 경찰서?'
가던 길을 거꾸로 약 3-4분 걸어가야 경찰서가 있었다. 거꾸로 가긴 싫은데.
이런 생각들을 실험실의 관찰노트 쓰듯 술술 목록화하고 있던 사이, '아뿔싸' 이미 주민증은 손에 쥐어져 있었다. 그것도 혹시나 범죄에 연루된 신분증일 수도 있어 면적이 넓은 면이 아닌 측면을 집어 들고 있었다. 범죄에 연루될 가능성은 0.0000001% 로 어마어마하게 희박한 일이긴 하다. 어쨌든 이제 후진은 없다.
주민등록증을 살펴보았다.
'용인시에 소속된 07년도 남학생의 주민등록증이 왜 이 먼 거리에 와 있을까.'
주위를 둘러보았다. 신분증을 잃어버려서 길가를 헤매는 주민등록증의 사진 속과 비슷한 남학생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어쩔 수 없다.
가자, 경찰서로.
살다 보면 경찰서에 갈 일이 몇 번이나 있을까. 경찰서는 딱히 가고 싶은 곳은 아니었다. 지은 죄도 없지만 괜히 없는 죄도 털어 나올 것 같아서? 그런 곳을 인연도 없는 사람을 위해 거꾸로 거슬러 가고 있는 상황이 우스웠다.
어느덧 경찰서 입구에 도착하였다. 민원봉사실 간판이 입구 바로 옆에 보였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응? 응? 응?
영화배우 임지연이 연상되는 경찰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어떤 일로 오셨냐고 물었다.
'네, 좋아합니다.'를 시전 할 뻔. '정신 차려.'
어디서 주웠는지 자초지종을 얘기하며 지문이 묻을지도 몰라 측면만을 조심스럽게 잡고 가져왔던 주민등록증을 건네었다. 다시 한번 또 말하지만 매우 조심스럽게 들고 온 주민등록증이었다.
'악? 악? 안돼.'
그렇게 조심히 들고 온 주민등록증을 경찰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넓은 면을 집어 들었다. 경찰의 지문이 묻어 버린 것이다. 이제 0.0000001%의 확률로 범죄 가능성이 있다 하더라도 지문을 채취하기란 어려워졌다.
경찰이 이름과 연락처를 물어왔다. 아무리 임지연을 닮은 사람이 연락처를 묻더라도 경찰이 물으니 알려주기 싫었다. 순간 떨렸나? 왜 이름을 더듬으면서 알려주고 있는지.
경찰서를 나서니 그냥 순간 근처 맛있는 포장마차 집 호떡이 당겼다. 이미 뇌의 중심에는 호떡의 달고 달디 단 쫄깃함으로 잠식되어 버렸다. 옛다 포상이다. 그렇게 애써 포장마차를 찾아 걸었다. 그런데 왜 왜, 하필이면 포장마차의 문이 닫혀 있단 말인가. 가는 날이 장날이다.
착한 일을 하면 신이 보상 해준다는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내돈내산으로 먹으려는 호떡 한 장 조차 맘대로 할 수 없는 세상에 무슨 포상인가. 산타가 세상의 모든 아이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하룻밤 동안 주려면 엄청난 이동속도가 필요하다. 하지만 여기에는 전제가 있다. 착한 아이에게만 주는 선물이다. 그런데 직접 산타에게 선물을 받았다는 아이는 없다. 세상에 착한 아이가 없는 것일까 아니면 산타가 없는 것일까.
그냥 지나쳤더라면 어땠을까? 아마 떨어진 주민등록증을 모른 척하고 지나쳤더라면 집에 가서도 생각이 나서 찜찜함에 잠을 이루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냥 편안하게 잠을 자고 싶은 욕구 때문이었다.
집 가는 길의 사람구경은 의외로 더없이 풍요롭다. 하루 일과를 마무리하고 집으로 향하는 사람들의 어깨는 한없이 가볍다. 더군다나 수면욕을 채운 꿀템까지 장착했으니 그것이 포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