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은인

뜻밖의 여행, 피해 간 운명, 그리고 생명의 은인

by 생각하는냥

겨울이 지나고, 아직은 쌀쌀한 초봄의 3월 말.

어쩌다 보니 제부도 근처의 한 펜션에 머물게 되었다.


한 달 전, 친구들과 술을 마시다 얼결에 나온 이야기가 현실이 될 거라곤 생각도 못 했다. 집돌이에게 여행이란 피곤한 일이었고, 설마 가겠냐 싶었는데 결국 이렇게 제부도에 오게 된 것이다. 다행히 펜션은 깨끗하고 숙박하기에 더없이 좋았다.


그러나 주변에 걸어서 갈만한 곳이 없어 결국 먹고 마시는 여행이 되고 말았다. 다행인 것은 친구들이 음식과 설거지를 도맡아 해준 덕분에, 남은 역할은 '먹깨비'뿐이었다. 먹고 또 먹고. 다시 먹고...


배가 남산만 해진 탓에 소화시킬 겸 몇몇을 꼬드겨 근처 바다로 해넘이를 보러 가자고 하였다. 처음 방문한 곳이다 보니 아는 정보가 없어 일단 지도를 켜고 제일 가까운 해변으로 향하였다.


지도상으로 제일 가까운 곳을 향해 걷고 보니 어느 횟집 뒷마당이었다. 바다는커녕 간조로 갯벌만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더 한참을 걸어서 해변으로 간다 한들 바닷물이 들어올 리 없었다. 그나마 멀리 보이는 갯벌 끝 부분에 조금이나마 보이는 바다가 다행이면 다행이랄까.


벤치에 앉아 저무는 해를 바라보며, 붉게 물든 하늘을 폰 카메라에 담느라 분주하였다. 그러다 휴대폰이 금세 방전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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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떨어지자 일어서려는데 한 친구가 빨랫줄에 널려 있는 마른 생선을 무슨 작품 사진이라도 찍는 듯 카메라에 담고 있었다. 그놈의 생선이 뭐냐며 어두워지니 빨리 가자고 친구에게 타박을 주었다.


그리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4차선 도로 옆 인도를 걷고 있을 때, 커브길 너머에서 평소 듣기 어려운 굉음이 들려왔다. 심상치 않은 소리에 걸음을 재촉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4차선 한가운데에 본넷을 상당 부분 파손된 경차 한대가 서 있었다. 도로에는 부서진 일부 금속과 유리 파편들이 널려져 있었다.


사고 현장으로 가까이 달려가 보니, 차 안의 부상자들은 꺼내기도 어려웠지만 꺼내다가 더 다칠 것이 우려되었다. 이미 다른 차에서 내린 사람들이 먼저 119에 신고를 마친 상태였다.


사고차량이 갑자기 커브길에서 좌회전을 시도하며 중앙선을 넘어 인도 위의 가로등을 들이받고 튕겨 나와 도로 중앙까지 밀려갔다고 했다. 차량 뒤에는 '초보운전'이라는 글자가 붙여져 있었다.


충돌했다던 가로등을 보니 찌그러진 곳이 선명하였다. 순간 소름 돋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위치는 친구가 그놈의 생선 촬영을 하지 않았더라면 우리가 걷고 있었을 위치쯤이었다. 그놈의 생선이 아니었다면, 우리가 그 차에 그대로 당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머뭇거릴 틈이 없었다. 사고로 인해 4차선 중 1개 차선만 이용 가능한 데다 날은 어두워지고 있었고 게다가 잘 보이지 않는 커브길이라서 2차 사고가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지만 119에 신고했던 사람들은 차에서 경광봉을 꺼내 들어 뒤쪽에서 오는 차량을 통제하였고 우리는 앞쪽으로 달려가 통제하였다.


말이 통제지 경광봉도 없었기에 친구들에게는 휴대폰을 꺼내어 흔들라 하였고 휴대폰이 방전된 나는 최전방에서 양팔을 흔들어대며 폴짝폴짝 뛰는 게 다였다. 어두워지고 있으니 뭐라도 운전자에게 신호할 방법이 마땅히 생각나는 게 그것 말고는 없었다.


그렇게 신호를 하니 눈치 빠른 차는 속도를 줄였지만, 일부 차들은 불나방처럼 아슬아슬하게 돌진했다. 사고가 나든 말든 뚫린 곳이 있으면 그 사이로 막 가는 차량을 어찌할 방법은 없었다.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차와 구급차가 사고 현장에 도착하였다.


부상자들은 바로 구급차에 실려졌고 경찰에 의해 현장은 금세 수습되었다. 그제야 안심하며 사고 현장을 빠져나왔다.


펜션으로 돌아와 남아 있던 친구들에게 무용담을 들려주었지만, 공감하는 듯하면서도 어딘가 시큰둥한 표정이었다. 현장에 없던 사람에게는 영상 없이 당시의 긴박감을 온전히 전달하기 어려웠다. 그저 '유튜브에 올렸다면 시민영웅이 되었을 텐데 아쉽다'라며 맞장구를 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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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긴박함을 기억해 주는 건 친구 폰에 찍힌 노을 속 깡마른 생선과 폴짝폴짝 뛰느라 뻐근해진 근육통뿐이었다.


살다 보니, 빨랫줄에 매달린 생선이 생명의 은인이 될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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