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주관적이고 이기적인 영화 리뷰 '패스트 라이브즈

우리, 인연일까? (스포 있음)

by 생각하는냥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는 '인연'에 대한 이야기다.


왜 우리 인생의 어느 지점에선가 한 번쯤은 이런 이야기 나눠본 적 있지 않나. 인연과 운명, 그리고 전생에 대해 밤새워가며 이야기했던. 그런 이야기를 섬세한 영상미와 함께 해성, 노라, 아서의 관계의 깊이로 풀어나가는 영화다.


시작은 나영의 엄마로부터였다.


초등학생인 나영에게 엄마는 굳이 '추억'을 만들어 주겠노라며 이민을 앞두고 나영이 좋아한다는 해성과 데이트를 하게 한다. 헤어지게 될 거라는 걸 모른 채 해성은 나영과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어쩌면 이 추억이 없었더라면 그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서로를 찾는 일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나중에 나영이 이민을 가게 된다는 걸 알게 되자

"야, (잠깐의 정적이 흐른 후) 잘 가라."

그렇게 둘은 이별 아닌 이별을 해야만 했다.


캐나다로 이민을 간 나영은 12년 뒤 '노라'라는 이름으로 뉴욕에서 극작가의 삶을 살아간다. 노라는 어느 날 아버지의 sns에서 자신을 찾는 해성의 글을 보게 되고 해성과 연락을 하게 된다. 이때부터 영화 '접속'을 찍는 남녀 주인공, 아니나 다를까 둘의 감정은 커져만 간다.


서로를 연인이라 하지는 않았지만 서로의 감정은 이미 애틋해져 있었다. 하지만 서울과 뉴욕이라는 거리는 만만치 않은 장애물이었다. 게다가 젊은 남녀에게 각자의 진로를 위한 선택 또한 장애물이었다.


어리고 젊었던 시절 전학을 가니까 헤어지자, 군대 가니까 헤어지자, 유학 가니까 헤어지자, 멀리 시골로 발령이 나서 헤어지자, 불명확한 미래 때문에 이별을 선택해야만 했던 나의 혹은 내 주변의 이야기는 흔하디 흔했다. 당시는 되게 심각한 고민이었던 것 같은데 시간이 흐르고 보니 참 별 게 아니었단 생각이 든다.


해성은 자신의 진로를 위해 미국이 아닌 중국을 선택했고 노라는 한국이 아닌 예술가 레지던시를 선택했다. 그렇게 둘은 결국 이별을 선택했고, 그리고 노라는 반려자 아서를 만나 결혼을 하게 된다.


그리고 또다시 12년이라는 세월이 흐른다.


해성은 노라를 만나러 뉴욕으로 향한다. 초등학교 동창이라는 풋풋한 추억의 감정으로 만나지만 20대에 나누었던 애틋한 감정이 조금은 남아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게 둘은 만났다.


아서, 해성, 그리고 노라의 술집씬.

한국말을 전혀 모르는 아서는 혼자 술잔을 기울이고 있고, 해성과 노라는 그 옆에서 한국어로 대화를 나눈다. 그때 아서는 한국말을 전혀 몰랐을까? 아서는 분명 그랬다. 한국말로 잠꼬대를 하는 노라가 불안해 보인다며 한국말을 배웠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러니 어느 정도는 알아듣지 않았을까?


아서가 아내인 노라를 해성과 만나게 한 것은 어찌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지만, 어쩌면 노라를 시험에 노출시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은 의심도 든다. 술집 씬에서 미세한 표정의 변화가 증거라고 한다면 너무 지극히 주관적이고 이기적인 생각일지도 모르겠다.


이 영화의 모든 것은 마지막 장면 약 10분을 위해 존재한다. 10분 동안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짧은 대사와 함께 수많이 비어있는 정적으로 채워 나간다. 희한하게 대사가 없는 곳에서 감독의 메시지가 전달되는 오묘함을 느끼게 된다. 감독의 실력 차이는 바로 이런 곳에서 터지는 게 아닐까.


노라는 해성과 택시를 기다리며 대사없이 마음의 소리를 주고 받는다. 이윽고 택시가 오자 그제야 해성은 말을 건넨다.


해성 : 야, 나영아

노라 : 응

해성 : 이것도 전생이라면 우리의 다음 생에서는 벌써 서로에게 다른 인연인 게 아닐까? 그때 우린 누굴까?

노라 : 모르겠어.

해성 : 나도. 그때 보자.


해성을 떠나보내고 카메라는 집을 향해 씁쓸하게 걷고 있는 노라의 뒷모습을 비춘다. 그리고 집 앞 계단에 앉아 기다리고 있던 아서의 품에 안겨 결국 울음을 터트린다.


굳이 설명이 필요없는 장면이었다. 해석은 각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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