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을 가리키면 달을 봐야지 손가락 끝은 왜 보고 있나
"달을 가리키면 달을 봐야지 손가락 끝은 왜 보고 있나"
본질(달)을 보지 않고 수단이나 형식(손가락)에만 집착하는 어리석음을 꼬집는 비유입니다.
글을 쓴다는 건 참 어렵습니다.
본질이 왜곡되는 건 글쓴이의 문제일까요, 읽는 이의 문제일까요.
예를 들어
측은지심으로 쓴 글이 플러팅으로 보인다면 글쓴이의 문제일 거예요.
아니야, 반박 좀 할게.
장항준이 그랬잖아. '영화가 안 되면 관객 탓'이라고 (물론 과거에 한 말이긴 해). 그래, 읽는 이가 문제지. 측은지심을 플러팅으로 읽은 건 독자잖아.
그러든지 말든지 사실 관심도 없잖아. 그래 그래서 글을 쓰는 건, 아니 누군가에게 내 마음의 '본질'을 왜곡 없이 전달하는 건 참 어려워.
2. 항상 잘 뛰어놀던 강아지가 이제 나이 들어 뒷다리 마비가 오니 건강했던 시절이 그립습니다. 생떼 부려서 밉다가도 팔에 고개를 기대고 누워 있으면 여전히 이쁩니다. 함께 한 시간이 19년인데 여전히 1년을 보내고 있는 것 같은 착각, 거울 속의 내 흰머리와 주름이 19년의 시간을 깨우칩니다.
함께 해줘서 고마워.
조금만 더 놀자.
3. 언제나 든든한 보호자였던 아버지가 이젠 거꾸로 내가 보호자가 되어야 하는 현실, 여전히 익숙지 않습니다.
나이 든다는 건 익숙지 않은 환경에 툭하고 던져진 것 같아 어색합니다.
그런데 참 뿌듯도 합니다.
아, 내가 이걸 해내네?
병원밥이 맛있는 것도 아닌데 병원밥 나오는 시간이 기다려지면 뿌듯한 보호자가 된 게 맞을 거예요.
입원 마지막날 나온 보호자 아침밥으로 나온 햄버거, 먹고 싶어 하시는 아버지께 양보한 거 칭찬해. 그래도 한 번 더 물어봤다. "아버지 이거 진짜 드실 거예요?"
왜 그런 날이 있다. 햄버거 먹고 싶진 않은데 갑자기 햄버거가 당기는 건 빼앗긴 햄버거를 수복하고 싶은 욕심이 생기는 그런 날.
(이 글은 일부러 높임말, 낮춤말을 섞어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