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에 돌란의 <마미>에서 그런 대사가 나온다. "우리가 제일 잘하는 게 사랑이잖아" 사실 이 영화를 다 보고 나면 그들이 잘하는 사랑이 얼마나 연약한지 느낄 수 있다. 사랑은 서로의 구원이 될 수 없고, 또 거친 현실 앞에서 너무나도 으스러지기 쉽다.
최근 일상을 보내며 "우리가 제일 잘하는 게 사랑이잖아"라는 말이 다시금 떠올랐다. 자발적으로 일을 쉬게 된 건지, 아니면 어쩔 수 없이 일을 쉬게 된 건지 헷갈리는 7월을 보내는 중이었다. 원래도 잠을 자는 걸 좋아했는데, 무기력을 핑계로 정말 하루에 절반 이상을 누워서 핸드폰도 보지 않고 잠만 잤다. 그런 나를 보고 진형이가 짧게라도 어디를 갔다 오자고 했다.
제안을 들었을 때만 해도 어딜 가고 싶다는 마음이 안 들어서 거절했었다. 가도 별로 좋을 것 같지가 않아서. 하지만 하루 종일 누워있는 나를 위해서 밥을 차려주고 또 뭐든 해주려는 진형이를 보고 마음을 열었다.
그래서 경주로 떠났다. 진형이와 사귀고 처음으로 여행을 떠난 곳이 바로 경주였다. 보문단지 근처 호텔에서 묵었었고, 경주월드를 가고 첨성대를 갔었다.
하늘이 무너질 듯이 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하루 종일 비가 쉬지 않고 내렸다. 수영을 하고 싶어서 수영장이 있는 숙소를 잡았는데, 머무는 내내 비가 내렸다. 그래서 비를 맞으면서 수영을 했다. 추운 건 어쩔 수 없었지만, 쏟아지는 비를 맞으면서 왠지 모를 해방감도 느껴졌다. 같이 고기를 구워 먹고, 동생과 전화를 하며 동물의 숲을 같이 했다. 주변이 참 조용한 숙소였다.
그리고 침대에 누워서 자기 전에 예전에 경주를 여행했을 때 사진을 보았다. 그때 나는 겨우 24살이었고, 진형이는 22살이었다. 그때 우린 서로를 잘 몰랐고, 앞으로 펼쳐질 미래도 잘 알지 못했다. 그때의 나는 어리고 참 발랄했다. 애교도 많고, 진형이를 좋아하는 게 눈에 보였다. 또 신기했던 것은 내가 진형이를 참 많이 찍었다는 것이다. 근데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부터 진형이가 나를 점점 더 많이 찍는 게 보였다.
7년 전 나는 내가 아닌 것 같았다. 다른 사람을 보는 것처럼 낯설었다. "내 20대를 지켜봐 줘서 고마워"라고 말했는데, 피곤한 진형이는 어느새 잠에 들어 대답이 없었다.
그리고 다음 날에 경주월드와 불국사역, 첨성대에 가서 2019년과 똑같이 사진을 찍었다. 비가 오다 말다 해서 습하고 더운 날씨라서 우리는 금방 지쳐버렸다.
여행을 마치고 경주역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진형이는 내게 물었다. "누나는 내가 누나 많이 좋아하는 거 알지?" 사실 그렇다. 알고 있다. 진형이가 나에게 주는 사랑은 마치 우리 고양이 단비가 나를 사랑하는 것처럼, 우리 엄마 아빠가 나를 사랑하는 것처럼 명확하고 분명하다. 하지만 왠지 그렇게 말하기 민망해서, "내가 더 좋아할걸?"이라고 장난을 쳤다.
우리가 제일 잘하는 건 사랑이다. 돈은 없고, 미래는 불투명하고, 앞날을 어떻게 될지 모르는 지극히 평범한 한 쌍인 우리에게 잘하는 걸 묻는다면 그건 사랑이다. 일을 하고 돈을 벌고 싶은 이유는 이 사랑을 온전히 지키고 싶기 때문이다. 이 사랑이 안전하길 바라고, 또 건강하길 바라서.
진형이는 다시 서울로 와서 면접 준비 때문에 불안해했다. 여전히 나는 위로에 서툴렀다. 함께하는 게 참 행복하면서도, 이 행복을 오래 지켜내기 위해서는 삶을 열심히 살 수밖에 없다. 우리가 잘하는 사랑, 이 작고 연약한 사랑을 지키고 싶다.
"우리가 제일 잘하는 게 사랑이잖아"라고 영화 <마미>속 엄마와 아들은 말한다. 하지만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아들을 견디지 못해 다시 보호시설로 보내고 영화는 끝이 난다. 우리가 잘하는 게 사랑이라는 생각이 들자, 영화의 마지막 장면들이 떠올랐다.
현실 속에서 이 사랑이 무너지지 않도록, 힘없는 무언가가 되지 않도록 하고 싶었다.